한 위원장, 임기 내년 7월 "중도 사퇴 뜻 없다"방통위 과제 산적, 수많은 의혹 여전공영성-독립성 보장 新 컨트롤타워 필요
  • 중국 평민 출신이었던 유방(劉邦)이 한(漢)나라 제1대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한신(韓信)'과 '장량(張良)' 두 명의 책사 덕분이었다. 유방은 이 둘의 지략에 힘입어 진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았으며, 항우(項羽)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이후 한신은 정치에 관여하다가 유방에게 숙청당한 반면, 장량은 관직을 내려놓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며 편한 여생을 보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략가로 촉망받던 이 둘의 상반된 결말은 지금까지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한신의 경우 물러날 시기를 놓치고 죽임을 당했지만, 장량은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와 목숨과 업적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박수칠 때 떠나지 않은자'와 박수칠 때 떠난자'의 차이다.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들어서면서 지난 정부 인사였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통위법에 따라 한 위원장의 임기는 3년으로, 내년 7월까지다. 그는 "최대한 성실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1년 가량 남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합의제 독립기구로 정부(청와대)가 2명, 여당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해 구성한다. 방통위원장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으로, 매 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바뀌었다. 한 위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됐으며, 2020년 한 차례 연임된 바 있다.

    한 위원장은 방통위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근거로 들며 중도 사퇴의 뜻을 일축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 위원장이 임기 동안의 성과는 어떨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을 비롯해 분리공시제 도입, 온라인 플랫폼 규제, n번방 등 온라인 성범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육성,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 등의 사안이 산적한 채 표류, 업계의 근심이 가득하다. 그는 KBS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법무부 훈령에 대해 부적절한 측면 있다고 답변하면서 방통위원장의 중립성에 위배됐다는 지적도 받았다.

    임기 초기부터 한 위원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여전하다. 그는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과다 예산지출 논란에 휩싸였으며, 정권과 언론 간 유착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후 ▲경력 허위 기재-누락 논란 ▲부당 소득공제 논란 ▲다운계약서 의혹 ▲음주운전 의혹 ▲논문 표절 의혹 ▲변호사 겸직 위반 논란 등의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들어서는 농지법 위반까지 불거지면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뜻하는 '용사행장(用舍行藏)'을 아는 사람이 현자라 칭했다. 한 위원장이 방통위의 진정한 공정성과 독립성을 원한다면 지금이 물러날 때가 아닌가. 새 정부에 대한 발목 잡기와 몽니를 멈추고 소신 있는 '용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