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90원·18.9%↑ vs 9160원·동결…최저임금 동상이몽공익위원 "다음 회의 수정안 안내면 심의촉진구간 제시"오름폭 낮으면 노동계 반발·대정부 투쟁 격화할 가능성민노총, 주52시간 개편 "노동자 적대시…저항 받을것"
  • ▲ 최저임금위원회 경영계와 노동계 엇갈린 시선.ⓒ연합뉴스
    ▲ 최저임금위원회 경영계와 노동계 엇갈린 시선.ⓒ연합뉴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복합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가 노정 갈등 양상마저 보이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24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비공개로 열린 제6차 전원회의에서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요구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지급 능력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앞선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9160원)보다 18.9%(1730원) 오른 시간당 1만89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노동계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인상) 현실화로 저소득 계층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두자릿수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초 요구안을 제시한 뒤 몇 차례 더 수정 요구안을 내놓으며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양측의 1730원 차이는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박준식 최저임금위 위원장은 오는 28일 예정된 제7차 전원회의에서 노사가 수정 요구안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기로 했다. 심의촉진구간은 노사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을 때 공익위원이 제시하는 최저임금 인상안의 상·하한선을 말한다. 견해차를 좁혀가는 도중에 심의촉진구간이 제시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보통은 노사가 몇 차례 수정요구안을 내놓고 더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때 공익위원이 최종 결정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제시한다. 또한 노사 합의로 요청하면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는 게 위원회 전통이다. 1차 수정요구안을 내지 않는다고 공익위원이 바로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는 건 흔한 경우는 아니다.
  • ▲ 민주노총 대규모 집회 모습.ⓒ연합뉴스
    ▲ 민주노총 대규모 집회 모습.ⓒ연합뉴스
    일각에선 노사 간 격차가 워낙 커 올해도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결정표)를 쥔 데다 새 정부가 민간기업의 활력을 높여 경기 회복을 뒷받침한다는 방침이어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두자릿수 증가율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같은 맥락에서 노사 간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공익위원이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결정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최저임금 오름폭이 낮을 경우 노동계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결정을 계기로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여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동계는 전날 고용노동부가 주52시간제 기본 틀을 유지하되, 총량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꿔 제도운용을 유연하게 하겠다고 개편 방향을 발표하자 즉각 반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노동부가)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장시간노동 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면서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 정부는 앞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때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등 화물차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는 노동정책 방향에 스스로 생채기를 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내심 윤석열 정부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 물류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대혁신의 메스를 들어주길 바랐는데 솔직히 실망했다"면서 "화물연대는 노조가 아니므로 최소운임을 정해놓고 이걸 보장해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개인사업자들의 가격담합이고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새 정부는) 파업을 가장한 담합에 추상같이 정의의 길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 정부가 화물연대 사태를 해결하면서 노동계에 대화보다는 파업을 장려한 셈이 됐다는 비판도 적잖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헌법 위에 '뗏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지 않고 밥그릇 챙기기 위한 실력행사에 (정부가) 요구를 다 들어주면 법과 원칙이 세워지겠느냐"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