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비회의 참여키로… 尹대통령 "국익 잘 지켜내겠다"전문가 "참여 불가피… 로열티장벽 혜택·인적교류 등 요구""룰 세팅前 들어가야"… "中과 FTA 활용 경제협력 모색해야"
  • ▲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지난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지난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4(Chip4) 동맹'에 참여할 뜻을 사실상 내비친 가운데 미국과의 본격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칩4를 미·중 사이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8일 알려진 바로는 외교부가 칩4 예비회의에 우리나라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표명한 상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문답에서 칩4 참여 여부와 관련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칩4 동맹은 미국이 지난 3월 제안한 '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를 말한다. 한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얼개다. 미국은 시스템반도체 설계, 한국과 대만은 생산, 일본은 소재 등에 특화돼 강점을 보이는 만큼 협력을 강화해 파트너 국가 간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미국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쯤 실무자급 예비회의를 열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회의에선 칩4의 세부 의제나 참여 수준 등이 구체적으로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으로선 칩4 동맹 가입이 고민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 정부는 일단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다. 수출 비중도 높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비중은 25.3%로 미국(14.9%)보다 10.4%포인트(p) 많다. 일각에선 중국이 반도체 원재료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경제보복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통령실은 아직 예비회의 날짜는 물론 앞으로 우리가 칩4에 공식 참여할지도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 미중 갈등.ⓒ연합뉴스
    ▲ 미중 갈등.ⓒ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칩4 가입은 사실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강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려는 한국으로선 반도체 설계분야 최강자인 미국의 반도체 협력 강화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칩4 동맹은 우리나라에 의미가 있다"며 "반도체 관련 국가 간 특히 미국과의 연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선택사항이 아니며 동맹에 안 들어갔을 때 우리가 처할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칩4 가입 요구를 거절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국익 손실의 크기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미국·중국을 동시에 만족시킬 기적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되 최대한 실리를 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글을 올렸다.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고 그 표준과 기술자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칩4 가입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나중에 칩4 동맹이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며 "반도체를 가지고 제품을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이 (나중에) 공급망에 추가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칩4 가입이 우리 기업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연구원 김수동 연구위원은 "칩4 가입은 우리로선 '루징 게임'일 수밖에 없다. (중국 시장에 대한) 우리 기업의 활동영역을 줄이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따라서) 칩4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야 한다"면서 "칩4 안에서 (미국의) 첨단·원천기술의 이전이나 공유 등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 일본은 우리와 경쟁관계여서 우리의 보유기술에 대해 역공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주고받기이다. 선진국에서 우리가 얻어낼 것은 기술이전밖에 없다"며 "중국 시장의 불이익을 감수할 테니 파트너 국가 간 로열티 장벽을 허무는 등의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 연구위원은 일각에서 중국 내 우리 기업의 반도체공장에 대해 향후 증설 등에 대비한 장비·소재 등의 안정적 공급을 칩4 가입 조건으로 확약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미국이 동맹을 추진하는 목적과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 ▲ 출근길 약식 인터뷰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 출근길 약식 인터뷰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성한경 교수는 "우리가 칩4 가입으로 얻을 게 많다"면서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절대 강자이므로 되도록 초기에, 룰(규칙)이 세팅되기 전에 들어가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우리의 경우 반도체 관련 인력난이 심각하다. 칩4 가입국 간 인적교류도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너무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아갈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한경 교수는 "미국의 속내가 결국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일 순 있으나, 아직 미국이 중국을 배척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면서 "아직 칩4는 파트너 국가 간 협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리가 먼저 나서 오버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성 교수는 "나중에 미국이 중국 배제를 노골화한다면 그때 가서 우리가 (칩4 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만 해도 생산성을 맞추려면 중국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는 만큼 중국과의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중국과 고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가 얼마 없다"며 "FTA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한중 간 경제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