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 15억 마포아파트, 반값거래동·호수 노출에 매수자 신상까지 털어단톡방 정보공유 상시감시…중개업소도 '눈치'담합 신고해도 처벌, 극소수…포상금 지급 '0'
  • 집값 담합. ⓒ연합뉴스
    ▲ 집값 담합. ⓒ연합뉴스
    부동산 하락장에 매수심리 위축과 집값 고점 인식이 심화하면서 서울에서도 '반토막 거래'가 나타나자 주민들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일부 소유주들은 가격을 낮춘 거래가 아파트 이미지 하락을 부추기고 자산가치를 떨어뜨린다면서 '급매로 집을 판 입주자를 색출해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유명 부동산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 등에서 최근 실거래 등록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염리 삼성래미안' 거래 건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 단지 전용 84㎡가 9월21일 8억원(16층)에 실거래되면서다. 지난해 9월 같은 면적이 15억4500만원(8층)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지난달 20일 같은 면적의 전세가 8억1000만원에 계약된 것보다고 낮은 금액이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같은 면적의 매물 호가는 14억5000만~16억5000만원이다. 인근 A공인 대표는 "이달 초 15억5000만원에 나왔던 매물이 최근 호가를 1억원 내려 14억5000만원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8억원대 매물은 본 적이 없다"며 "8억원은 매매가 아니라 전세 시세"라고 말했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단기의 가치를 떨어뜨린 매도자와 매수자를 찾아내 입주 못 하게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단지는 최근 아파트 실거래앱 '호갱노노'에서 실시간 인기 아파트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번 거래뿐만 아니라 주요 단지들의 경우 시세 방어를 위해 입주자조합,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가격담합을 벌이고 있어 논란이다.

    앞서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 아르테온' 전용 84㎡도 같은 달 직전 거래가(16억4000만원)에 비해 1억6000만원 저렴한 14억80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되면서 분풀이가 쏟아졌다.

    이 아파트 소유자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이웃들 재산을 이렇게 다 깎아 먹고 고덕의 가치를 파괴하느냐"며 "무책임한 행동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9월 경기 안양시 '푸른마을 인덕원 대우' 전용 59㎡는 5억3000만원에 손바뀜됐다. KB부동산 기준 시세가 7억8000만원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2억5000만원가량 몸값을 낮춘 급매다. 지난해 6월 최고가(8억7000만원) 대비로는 3억4000만원 떨어졌다.

    그러자 부동산 커뮤니티에 "24평 헐값에 매도한 사람 누구인가요? 본인 급하다고 이기적으로 피해를 주는 게 맞다고 봅니까?", "7년 전에 사서 매도하신 분인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손해 안 보고 파심", "매수자 신상도 현수막 걸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함부로 못 사죠" 등 매도인과 매수인을 힐난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거래 물건의 동과 호수는 물론 매도인의 이익 규모까지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복수의 부동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경우 거래 날짜와 층수 정도만 알려주지만, 모바일 플랫폼들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거래자들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집주인들이 집값을 지키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요즘 급매를 단속하려는 입주민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지난 4년여간 이어진 집값 상승기에는 호가를 더 높이려는 집단행위가 이어졌다.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에 '우리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를 부착하고 최고가 대비 낮은 금액에 매물을 등록하지 못하도록 권고하면서 교묘한 집값 담합에 나섰던 단지들이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체 대화방도 집주인들이 집값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아파트를 매도할 계획이 없는데도 최고가 대비 비싼 가격에 매물로 등록하자는 내용의 대화가 오가는 식이다.

    공인중개사들도 난처해졌다. 중개업소가 가격 하락을 유도한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역대급 거래 절벽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 급매물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비난까지 받고 있다.

    강서구 B공인 관계자는 "최고 실거래가보다 낮은 호가에 매물을 등록하면 해당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로부터 '왜 집값을 떨어뜨리려고 하느냐'는 식의 항의 전화가 쏟아지기도 했다"며 "호가가 낮은 매물을 보유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입주자 커뮤니티나 지역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집주인들 때문에 압박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급매물을 공개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문의한 고객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법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강동구 C공인 대표는 "호가를 지켜 달라는 항의 전화가 들어와 포털사이트에 등록한 매물을 삭제한 적이 있다"며 "그 뒤로 급매물은 연락처를 남기고 간 고객들에게만 알려 드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주인들이 상승장을 누린 데다 소위 '영끌'해서 아파트를 무리하게 매수한 사례도 많다 보니 최근의 집값 하락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높은 금리를 견디지 못하는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한 급매물이 시장에 더 풀릴 것으로 보인다"며 "전국 아파트 단지마다 집값을 방어하려는 집주인들의 '고군분투'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집값 담합행위는 현행법상 엄연히 범법 행위이지만 담합 가담자에 대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가격을 왜곡시키는 담합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여 동안 관계 당국에 접수된 집값 담합 신고건 중 열에 아홉은 실제 조사까지 가지도 못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운영하는 '부동산거래질서 교란 행위 신고센터'는 2020년 2월21일부터 2022년 8월31일까지 집값 담합 의심행위 신고를 총 2149건 받았다. 이 가운데 1381건이 실제 조사로 이어졌다.

    이 중 경찰 수사(99건)나 검찰 송치(5건) 등 사법 당국의 조치로 이어진 건은 128건(9.2%)뿐이었고 나머지 1217건(88.1%)은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 검찰이 기소(13건)하고, 확정판결(11건)까지 받은 경우 역시 극소수였다.

    부동산거래질서 교란 행위를 신고하면 1건당 5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지만, 2021년 3월9일 이후 포상금 지급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검사가 공소 제기 또는 기소유예를 결정해야만 지급할 수 있는 탓이다. 오인신고 또는 허위신고 등을 막으려는 의도이지만 신고자 입장에서는 신고유인이 거의 없는 셈이다.

    홍기원 의원은 "실제 부동산 시장의 금지행위를 실시간으로 신고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신고 건수와 비교해 확정판결까지 내려진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부동산거래질서 교란 행위 신고센터가 접수뿐만 아니라 조치까지 일원화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집값 담합으로 시장 교란, 왜곡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