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현실화에 과세대상 27만명 증가'공시가보다 낮은 실거래가' 역전현장 확산"종부세 등 세제-공시가격 손질해야" 주장도
  •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221108 ⓒ연합뉴스
    ▲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221108 ⓒ연합뉴스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과세 인원이 사상 처음으로 120만명에 부과될 전망이다.

    문제는 집값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종부세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높아지는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집값은 수억씩 떨어졌는데, 종부세는 집값이 떨어지기 전 수준을 기준으로 부과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역대급 조세저항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종부세 등 세제와 공시가격제도를 전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예산정책처가 주최한 '2022년 세제 개편안' 토론회에서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이 약 12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것은 2005년 종부세 도입 이후 처음이다.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매년 늘고 있다. 주택분 납부 대상자는 △2017년 33만명 △2018년 39만명 △2019년 51만명 △20202년 66만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93만명으로 증가했다.

    토지분 종부세 납부대상자 추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통상 대상자가 연간 8만명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전체 종부세 납부대상자는 130만명 선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전체 종부세 납부자 101만명보다 약 28% 늘어나는 것이다.

    종부세 과세 인원이 급증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주택 투기수요를 억제한다는 이유로 공시가격과 세율 등을 올렸기 때문이다. 종부세 납부 기준을 정하는 공시가격을 대폭 올린 '공시가 현실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종부세, 재산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공시가격은 지난해 19% 오른 데 이어 올해 17.2% 뛰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도 세 부담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종부세율은 201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주택자, 다주택자에 상관없이 0.5~2.0%였지만, 문 정부 집권기인 2019~2020년 '징벌적 과세' 흐름이 강해지면서 최대 6%까지 올랐다. 현재 다주택자는 일반 1주택자 세율(0.6~3.0%)보다 두 배 높은 1.2~6.0% 중과세율을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서울에 수십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사람보다 수억원대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이 책정됐다.

    기재부에 따르면 공시가격 합산 금액이 20억원인 다주택자는 현행 제도상 3114만원의 종부세를 내야 한다. 반면 25억원짜리 주택 한 채를 보유한 1주택자는 종부세를 2165만원 내야 한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최근 집값이 급락했지만 이달 말 고지될 종부세는 주택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전인 올 상반기 수준을 기준으로 매겨졌다는 점이다.

    집값 추락 속도가 가팔라지자 최근 공시가격이 실거래보다 높은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다. 집을 가진 국민의 체감 경기는 영하권인데, 고율의 세금까지 부담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는 올해 8월과 지난달 각각 1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호갱노노가 집계한 해당 면적의 올해 공시가격은 19억8500만원이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3500만원 높은 것이다.

    인근 '레이크팰리스' 84㎡도 지난달 말 17억9500만원에 거래돼 실거래가가 공시가격 18억26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 더샵 센트럴시티' 60㎡도 공시가격 5억3600만원보다 낮은 5억500만원에 지난달 거래됐다.

    공시가격의 시세 역전 현장이 나타나면서 조세저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게다가 내년에도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전 정부가 지난해 종부세율을 최대 두 배 인상하자 급격한 세 부담에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반발하는 납세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연말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종부세 내역이 지난해 말 고지되자 세금 폭탄에 놀란 납세자들이 올 상반기부터 무더기 행정심판을 조세심판원에 제기했다.

    올 들어 9월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종부세 불복 심판청구는 3843건으로, 1년 전 284건보다 14배 급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종부세는 애초 1%만 내던 부자세였는데, 이제는 '보통세'로 바뀔 정도로 많은 이들이 부담하게 됐다"며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아파트 대상이 늘어난 만큼 불만의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집값이 떨어졌는데 안 내던 세금까지 내야 하는 억울한 세입자가 나오지 않도록 세제와 공시가 제도를 전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으로 부동산시장이 어려운 만큼 앞으로 조세저항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종부세 완화 목줄을 쥔 국회가 세 부담 완화법을 통과시킬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올해 종부세에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고 기본공제금액을 상향해 보유세 부담을 완화하려 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무산됐다.

    종부세율을 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세제 개편안 역시 야당 반대로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도입됐지만, 시행 중에 집값이 급등하면서 존재 이유가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며 "집을 처분한 뒤 내는 양도소득세와 달리 매년 집값을 열어 내는 세금인 만큼 가계 소비까지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종부세를 폐기하고 보유세를 재산세로 일원화하거나 양도세를 인하해 종부세를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퇴로를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