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UAE 정상 외교서 61억불 규모 에너지·신산업 프로젝트 시동MB의 바라카 원전 수주가 초석… 승부사 기질로 佛 수주 뒤집어文정부 탈원전이 생태계 망쳐·악몽 진행형… 올해도 일감 없을 듯산업부 "3.5兆 일감 조기공급·매년 1기씩 준공… 인력·금융 지원도"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기구한 운명의 한국 원자력발전(원전)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탈(脫)원전 뒤집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뒤집기란 말은 어폐가 있다. 원전이 제 값어치를 할 수 있게 정상화한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다만 이념에 얽매여 잘못된 선택을 한 탈원전은 그 피해가 생각보다 넓고 깊다. 원전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한번 해를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이던 지난 16일(현지시각) 아부다비 알다프라 지역에 건설된 바라카 원전을 찾았다. 중동 최초의 원전인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최초로 수출한 원전으로 '한-UAE 경제협력'의 상징과도 같다.

    바라카 원전은 현재 1·2호기가 상업 운전 중이다. 3호기는 가동 준비를 마쳤고 4호기는 내년 완공될 예정이다. 원전이 모두 가동되면 UAE 전력 수요의 최대 25%를 공급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3호기 가동 기념식에서 "팀코리아가 한국 원전 산업의 기술력과 경험을 보여주었듯 한국과 UAE 양국이 바라카의 성공을 바탕으로 힘을 모아 UAE 내 추가적인 원전 협력과 제3국 공동진출 등 확대된 성과를 창출할 때"라고 강조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6년 11월 셰이크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제의 초청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시찰하던 모습.ⓒ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6년 11월 셰이크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제의 초청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시찰하던 모습.ⓒ연합뉴스
    원전 수출은 MB(이명박)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수교를 맺은 한국과 UAE는 지난 2009년 186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원전 플랜트 사업을 통해 교류를 본격화했다. 이후 MB는 2011년 '아크' 부대(UAE 군사훈련협력단)도 파병했다. 부대 이름 아크(Akh)는 아랍어로 '형제'를 뜻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UAE에 김대기 비서실장을 특사 자격으로 먼저 보내 대통령 친서와 함께 MB의 서신을 전달했다. 지난 12일 뉴데일리TV '이슈와장창'에 출연한 박용석 이명박재단 사무국장에 따르면 사실상 바라카 원전 수출은 MB가 혼자 이뤄낸 성과나 다름없다. 박 사무국장 설명으로는 당시 원전 수주전은 수출 실적이 전무했던 우리나라가 미국과 프랑스, 일본과 경쟁을 벌일 때다. 당시 왕세제 신분이었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은 그때도 실질적인 권력자로서 원전과 국방 부문을 총괄하던 실세였다. 무함마드 왕세제가 국방을 함께 관리한다는 걸 안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 수주를 약속하면 프랑스가 자랑하는 라팔 다목적 전투기를 함께 팔겠다고 유혹했고 UAE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며 사실상 수주전은 프랑스 승리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발휘된 게 바로 '경제 대통령' MB의 승부사 기질이었다. 상황을 보고받은 MB는 무함마드 왕세제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고 무함마드는 이를 피했다. 통화 연결이 번번이 실패하자 당시 청와대 직원들까지 나서 체면이 깎인다며 만류했지만, MB는 "기왕 수주에 실패한 거, 전화 건다고 손해 볼 것 없다"며 "수주는 못 해도 이번 기회에 친해지면 (나중에) 다른 거라도 얻을 게 있다. 국익 앞에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냐. 상대(무함마드)는 마음의 빚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끈질긴 노력에 알라신도 감복했는지 나중에 MB는 무함마드 왕세제와의 통화에 성공했고 여기서 승부사 기질이 빛을 발한다. 현대건설 시절 중동에서의 경험을 통해 왕족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던 MB는 말치레가 아닌 진심을 담아 프랑스가 제안한 라팔 전투기 끼워팔기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첫째는 프랑스가 UAE와 적대관계인 이란과 군사협정을 맺은 사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둘째는 오일머니로 최신 전투기를 사들여와도 그걸 제대로 운용할 군대의 자질이 갖춰지지 않으면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한국은 소프트웨어 해당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부대 교관을 파견해 군대를 훈련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특수부대가 바로 '아크' 부대다. 결국 무함마드는 MB의 솔깃한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고, 한국은 UAE에 첫 원전을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배경을 문재인 정부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지난 2021년 11월 28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UAE에 4조1500억원 규모의 국산 요격미사일 '천궁Ⅱ'를 수출한 것을 두고 "(앞선 18일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참으로 기분 좋은 소식이다. 바라카 원전 수주가 아크 부대 파병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국방 협력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MB 정부 성과인 원전 수주와 아크 부대 파병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박 수석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쾌거는 100% 요격률을 자랑하는 천궁Ⅱ의 성능뿐 아니라 역대 3개 정부(이명박·박근혜·문재인)의 12년간 노력의 총결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뉴데일리DB
    ▲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뉴데일리DB
    그러나 K-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까지 내몰렸다. 문 정부 5년간 원전 생태계는 붕괴했다. 고급인력은 빠져나가고 신기술 확보는 요원해졌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8월까지 폐업한 중소 원전업체는 69개로, 전체의 14.7%에 달한다. 국내 원전 생태계 붕괴는 원전 주기기 제작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협력업체 거래규모를 봐도 알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협력업체의 계약 건수는 2016년 2786건에서 2020년 1172건으로, 계약한 협력업체 수는 같은 기간 320개에서 226개로 감소했다.

    제대로 된 화력발전소도 건설한 적 없던 시절, 원전 제작의 초석을 놓았던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기획단에서 일했던 김광모 전 부단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보배가 정부를 잘못 만난 통에 모두 깡그리 부서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자기 나라에는 방사능이 무서워 탈원전한다고 하면서 남의 나라에 가서 원전 세일즈한다고 하니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부끄러운 줄 몰랐다"고 혹평했다.

    김 전 부단장은 이번 윤 대통령의 원전·방산 등 UAE 방문 성과와 관련해 "우리가 좋은 원전을 지어주고 계속 뒷바라지해준 것이 UAE가 한국을 신뢰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본다"며 "UAE도 한국이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바뀌어 믿을 수 있기에 한국을 경제 파트너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바로는 이번 UAE 방문에서 원전·방산·스마트 시티 등 총 61억 달러 규모의 24개 양해각서(MOU)와 계약이 체결됐다. '한-UAE 비즈니스 상담회'에선 257건의 상담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총 1100만 달러 규모의 사업 계약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전력 분야는 유니슨에이치케티알, 코리아누클리어파트너스 등 5개 국내 원전 기자재 기업이 참여해 43건의 상담을 진행했으며 460만 달러의 계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 2021년 12월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에서 원자력 공약 발표하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선거 후보.ⓒ연합뉴스
    ▲ 2021년 12월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에서 원자력 공약 발표하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선거 후보.ⓒ연합뉴스
    문제는 탈원전의 그늘이 생각보다 넓고 피해는 크다는 점이다. 한 원전 전문가는 "(정권은 바뀌었지만) 원전 생태계 복원은 아직 요원하다"며 "(UAE 성과는) 앞으로의 일감을 얻어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당장 수출이 성사된 게 아니고 국내 현장에선 탈원전 폐기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암담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새 정부 들어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다시 착수했으나 환경영향평가가 일러야 올해 말쯤 끝날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앞으로 거의 1년간 국내 원전 생태계는 혹한기를 버텨내야만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김 전 부단장도 "국내 원전 산업은 일감이 없어 사활을 걱정해야 한다. 수주가 유력시됐던 영국 원전 건설과 UAE 바라카 원전 유지·보수도 탈원전 직격탄을 맞아 날아갔다"면서 "세계 5위권 원전 건설업체인 두산중공업은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를 빼곤 수주가 없는 실정"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정부는 일감 조기 공급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지난해 2조40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는 1조1000억 원을 늘려 총 3조5000억 원의 일감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또 올해 신한울 2호기, 내년 신고리 5호기, 2025년 신고리 6호기를 준공하는 등 매년 원전 1기를 준공해 업계에 일감을 빠르게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포부도 제시했다.

    천영길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17일 경남창원 지역 원전 협력업체 3곳을 찾아 원전생태계 복원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두산에너빌리티 사내 협력사로,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주기기 제관·용접 전문 중소기업인 원비두기술 박봉규 대표는 "신한울 3·4호기 일감이 개시된 것 자체가 기업경영에 희망을 줬다. 수주 계약서로 기존 대출을 연장해 자금난 타개에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일감을 공급해 업계에 활력을 되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천 실장은 "원전 생태계 복원이 가속할 수 있도록 신한울 3·4호기 일감의 신속한 공급은 물론 금융·인력 지원의 대상과 규모를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