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부총리 "헌법 원칙 어긋나… 근본적 재논의 필요"이 노동장관 "법치주의 근간 흔들어… 파업 만능주의 조장"대통령실, 野 강행 법안들 '일괄 거부권' 행사 검토 알려져
  • ▲ 지난해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일대에서 대우조선 임직원 등이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해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일대에서 대우조선 임직원 등이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20일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과 관련해 반대 목소리를 잇달아 내며 국회의 재논의를 촉구했다. 위헌 소지가 있는 데다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는 견해다.

    일각에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폭주하는 가운데 정부가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위해 군불을 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관련해 "헌법과 민법 원칙에 어긋나고 노사 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며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에 사실상의 영향력이 있는 자'로, 사실상 원청까지 확대할 빌미를 제공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사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주 민주당이 처리를 강행하면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 소위원회와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총 8명으로 짜진 환노위 소위는 민주당(4명)과 정의당(1명)이 과반을 차지한다.

    추 부총리는 이날 "개정안의 무리한 국회 강행처리 땐 사회 갈등과 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워 국가경제 전반에 심대한 부정적 여파가 예견된다"면서 "노사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이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데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정부는 오는 21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각계의 우려를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재논의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추 부총리는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등을 위배할 소지가 크다"면서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납 등 현재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쟁 대상조차 노동쟁의 대상으로 무리하게 포함해 노사갈등이 더 빈번해질 우려가 있다"고 부연했다. 또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의무자별로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정하게 하고 신원보증인의 배상책임을 면제해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 원칙을 훼손하고, 피해자 보호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연합뉴스·뉴시스
    ▲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연합뉴스·뉴시스
    이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의 재논의를 요청했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1953년 이후 노조법 개정은 전체 법체계의 정합성을 고려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이뤄져 왔다"면서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헌법, 민법과의 충돌 문제, 노사관계와 법·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진됐다. 노사관계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국회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민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개정안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며 "'실질적·구체적 지배 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사업주에게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모든 의무를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자인지를 판단할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아 원청은 자신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인지, 단체교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을 예측할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며 "단체교섭 장기화, 교섭체계 대혼란, 사법 분쟁 증가 등 현장의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장관은 특히 "'파업 만능주의'가 우려된다"면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임금체불, 해고자 복직 등의 권리분쟁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의 법률적 판단이 아닌 노조의 파업 등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돼 노사갈등 비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 장관은 "개정안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민법상 손해배상 원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며 "피해자가 일일이 과실비율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 불법행위자 모두에게 배상책임을 지게 해 피해자 배상을 우선하는 대법원 판례와도 충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중대한 예외를 노조법에 규정하는 것은 법체계상 맞지 않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서 "일부 노조의 불법행위를 과도하게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개정안이 대기업·정규직 노조는 더 보호받고 다수의 미조직 근로자에게 그 비용이 떠넘겨지는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지 못한다"면서 "기업의 손실, 투자 위축 등으로 말미암은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 어려움 등 연쇄적 부작용 속에서 미래 세대의 일자리 기회를 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끝으로 이 장관은 "일각에선 현장의 갈등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며 노사가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 한다"며 "이는 노조법을 관통하는 사용자, 노동쟁의 등 정의 조항의 개정이 미칠 영향을 간과한 무책임한 희망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장관은 앞선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노동부가)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사례 151건을 분석해보니 주로 특정 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대기업 노조 9곳에서 발생한 폭력 등 불법행위에 대해 이뤄졌다. 전체 노동자를 위한 법으로 볼 수 없다"면서 "(노란봉투법은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다뤘고 (민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위헌 소지, 다른 법률과의 충돌 소지 때문에 해결하지 않았던 법"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일각에선 이날 추 부총리와 이 장관이 시차를 두고 잇달아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 야당의 강행 처리 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통령 거부권은 해당 부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법률안을 제기하면 법제처 심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의결된다.

    대통령실은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 간호사법 등 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는 일부 법안에 대해 일괄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부처 현안을 보고한다. 보고 사안은 비공개이지만, 노란봉투법과 노조 회계 장부 미제출 건에 대해 보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