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장 시절 파격 발탁'금융개혁' 밤샘 호흡당국-민간금융 수장으로 조우… 존중과 현실 사이
  •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왼쪽)과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금융위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왼쪽)과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금융위
    인연이란 참 묘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임종룡 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2015년 3월 신제윤 위원장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아 장장 2년 4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순장조’가 되어 대통령과 함께 직을 마쳤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느냐구요?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으니까요.

    임종룡은(이후로는 편의상 직함을 생략하겠습니다) 금융위원장에 임명되자마자 ‘금융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창조경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강력한 금융 혁신을 원했습니다. 저금리, 고령화, IT 융합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존의 낡은 방식에 안주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배경에 깔려 있었습니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시스템의 혁신을 원한 것이죠.

    그리고 그 적임자로 임종룡을 낙점했습니다. 임종룡은 마치 오래 전부터 금융개혁을 준비했던 사람인 마냥 차근차근 임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임종룡은 ‘대책반장’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태종의 난세보다는 세종의 치세에 어울리는 인재였죠. 외환위기 불을 껐던 이헌재,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습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신숙주처럼 차분하게, 하나하나, 하지만 치밀하게 금융개혁을 이끌었습니다.

    임종룡은 임명되자마자 ‘제게 주어진 소명은 금융개혁’이라며 19명으로 구성된 ‘금융개혁회의’를 출범시킵니다. 그리고 5일 뒤 일요일, ‘금융개혁 이행을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이 때 권대영이 발탁됩니다. 조직내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유능한 젊은 인재를 뽑겠다며 대표선수로 앞세운 이가 바로 권대영이었습니다. 행시 38회인 권대영은 당시로서는 가장 빠르게 부이사관으로 승진했습니다. 권대영과 함께 윤상기, 남동우, 권주성 등이 ‘젊은 피’ 그룹으로 주목을 받았죠.

    임종룡이 이끈 금융개혁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민관합동의 금융개혁회의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금융개혁 자문단, 금융개혁 추진단을 꾸리고 금융개혁 전담조직을 신설했습니다. 4~6월 석달 동안 금융개혁회의가 6번, 자문단 회의가 60번 열렸습니다. 현장점검반은 금융사 146개사를 방문해 1450명(!)을 면담하고 1934건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신적성(신속, 적극, 성실) 원칙에 따라 제안의 47%는 바로 수용, 채택이 됐습니다. 수장인 임종룡도 37회나 현장을 방문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빨간 날 빼고 매주 월수금 현장을 방문한 셈입니다. 당시 개혁의 ‘젊은 피’였던 권대영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업무에 몰두했을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당시 안건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코넥스시장 활성화 방안, 파생상품시장 활성화 방안, 비상장주식 장외거래 인프라 강화방안, 전자증권제도 도입방안,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금융IT부문 자율보안체계 구축방안……. 한 마디로 못 건드리는 것 빼고는 전부 다 건드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인터넷은행, 마이데이터, 전자증권 등이 모두 이 때 잉태된 것이죠. 임종룡은 취임 첫 3개월 전광석화처럼 일을 처리한 뒤에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새로운 과제와 이슈를 발굴하며 2년 가까이 개혁의 동력을 이어갔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종룡은 곧 금융개혁, 금융개혁은 곧 임종룡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애꿎은 운명의 장난일까요. 대통령 탄핵 국면을 맞아 임종룡은 식물 위원장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개혁’이란 단어는 금기어가 됩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그랬습니다. ‘창조경제’와 마찬가지로 ‘금융개혁’이란 타이틀은 박근혜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였으니까요. 마치 금융개혁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여겨졌던 임종룡은, 그렇게 최종구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쓸쓸히 무대 뒤로 퇴장합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았던 임종룡은 하지만 2023년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된 것이죠. 요즘 매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공직에서 멀어진 임종룡이 지난 5년 동안 권대영을 몇 번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임종룡과 권대영의 관계는 사제관계에 가까운 도제관계로 보면 무방할 거라고 합니다. 임종룡으로서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불명예 강제 퇴장당한 일이 두고두고 원통했을 겁니다. 그리고 후배 권대영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을 테고요.

    윤석열 정부에서 임종룡과 권대영은 현업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위치는 반대가 됐죠. 권대영은 금융위를 이끄는 실질적 리더로, 임종룡은 금융위의 감독을 받는 민간금융기관장으로 직이 달라졌습니다. 이들이 공석에서, 또 사석에서 만나면 어떤 기분과 감정으로 만날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죽도록 힘든 고생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권대영과 임종룡의 스타일이 반대라는 겁니다. 권대영은 ‘대책반장’으로 불린 김석동과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권대영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임종룡 밑에서 금융권 전반에 걸친 개혁 과정을 경험했으니 문재인 정부에서도 귀하게 쓰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죠. 권대영은 35년 만의 카드수수료 개편 과정에서 당국의 카리스마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별명이 ‘지렛대 권’일 정도로 업계의 의견을 잘 듣고 반영하기로 유명합니다. 사석에서는 상대방을 편하게 대해주는 소탈한 스타일이기도 하죠.

    금융위에서 권대영이 위원장 감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뭅니다. 그런 권대영이 지난 6일 기자실에서 부동산 PF 브리핑을 자처했습니다. 건설사 부담 완화를 위해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겠지만 PF 참여자들도 반드시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권대영은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건을 보지 않고 바로바로 기자들의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예전 ‘김석동의 카리스마’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작년말 기준 부동산 PF 익스포저 데이터를 금융당국은 갖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주 한국은행에서 115조5000억원으로 공개했던 바로 그 데이터죠. 하지만 한은 데이터는 9월말 기준이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발생 전 데이터죠. 국회 의원실에서는 레고랜드 사태가 반영된 12월말 자료를 달라고 금융위와 금감원에 닦달 중이지만 당국은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숫자가 아주 안 좋아서 공개를 늦추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12월말 데이터가 바로 공개되면 시장에 큰 충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내부적으로 미리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임종룡은 임기 중 이렇다 할 금융위기를 겪지 않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2023년 현재는 15년 만에 은행 연쇄 파산이라는 불안이 시장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치세에서 난세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책반장’ 권대영이 레고랜드에 이어 부동산PF 불안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금융 수장으로서 임종룡이 어떤 역할과 활약을 보여줄 지도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