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사골' 공약 수두룩…추진·무산 반복돼 주민 희망고문구로차량기지 이전 18년만에 좌초…제2세종문화회관 갈등도개발호재 터지면 인근 부동산 '불장'…시장 왜곡·소비자 혼란공약 재원조달 방안 등 밝혀야…유권자 '짝퉁' 구별 안목 필요
  • "입만 열면 공수표 날리는 정치인이 투기꾼과 뭐가 다른가."

    얼마전 서울 구로구 구로차량기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아니면 말고식 개발공약에 불만을 쏟아냈다. 선거철 '사골공약'중 하나로 꼽히는 구로차량기지 이전사업은 당시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중이었지만 광명시의 결사반대에 부딪혀 사업추진이 불투명했다.

    이 주민은 지역사회 전체가 이전사업 망령을 쫓고 있다며 올해엔 가시적인 변화가 있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달뒤 차량기지 이전은 결국 예비타당성조사 벽을 넘지 못하고 사실상 무산됐다. 2005년 첫 논의후 추진과 중단을 반복한지 18년만이다.

    일부 정치인들의 '나몰라라식' 공약이 전국 부동산시장을 들쑤시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개발사업은 낙후된 시설을 이전 또는 철거한뒤 주거·상업시설이 밀집된 주상복합단지를 조성하거나 지하철이나 경전철 등 대중교통 노선을 신설하는 것을 말한다.

    랜드마크 조성·교통인프라 확충 등 개발호재가 터지면 주변 부동산시장은 소위 '불장'이 된다. 예컨대 최근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개발사업 경우 2년전 평가항목이 공개되자마자 인근 아파트단지 호가가 1억원이나 뛰었다.

    서울 핵심입지는 가격 상승폭이 더욱 '드라마틱'하다. 고가주택이 몰린 강남권이나 한강변, 여의도 등 핵심입지에서는 며칠만에 호가가 수억원 오르는게 예삿일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개발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전체자산 70%가 부동산인 한국에서 집값을 띄워줄 개발사업만큼 '약발'이 먹히는 공약도 없다.

    문제는 공약된 개발사업이 중간에 좌초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장침체기엔 더욱 그렇다.

    최근 무산된 구로차량기지 이전사업은 오세훈 서울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개발공약은 지역사회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선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예정부지가 문래동에서 여의도동으로 바뀌면서 주민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2019년 박원순 전 시장은 서울 서남권 문화시설 확보라는 명목아래 문래동 옛 방림방적 부지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조성하겠다는 개발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타당성조사와 중앙투자심사 등을 거치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듯 했지만 오세훈 시장 취임후 상황이 급변했다.

    오 시장은 문래동 부지가 협소하다는 판단아래 올 3월 여의도공원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짓고 기존 문래동 부지에는 주민친화적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시설 조성을 통한 지역 낙후이미지 개선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행정절차까지 끝낸 개발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신분당선 서북부연장(용산역~경기 고양시 삼송)도 대표적인 사골공약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당시 해당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파급력은 남달랐다. 새정부가 출범하자 직접적 수혜가 기대되는 서울 은평구 일대 부동산시장이 널뛰었다. 이전에도 오세훈 시장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해당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어 주민들 기대감은 증폭됐다.

    하지만 이사업도 낮은 경제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발목이 잡혀있다. 올 상반기중 평가결과가 공개될 예정인데 시장에서는 통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전국 곳곳에서 출처불명 개발관련 '썰'들이 흘러 나온다.

    실현 가능성 없는 개발공약은 시장을 왜곡시킨다. 왜곡된 시장정보는 치명적인 소비자 선택오류를 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실패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국민대표인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물론 공약을 100%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한사람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부동산 관련 공약만큼은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과 단계별 시행계획, 타 지자체·부처 협의방안 등을 공개해주길 바란다.

    유권자도 '짝퉁' 개발공약을 걸러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저 희망고문 운운하며 뒤늦게 불만만 토로하기엔 잃는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