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불가피, 기재부 앞서 손실보전예산 300억 셀프삭감 "112→56개 축소" vs "효율적 운행 필요"
  • ▲ 무궁화 열차.ⓒ연합뉴스
    ▲ 무궁화 열차.ⓒ연합뉴스


    코레일의 공공성과 수익성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손실보전 예산이 줄자 벽지노선 운행을 절반 가까이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감독 기관인 국토부는 겉으로는 벽지 노선 감축에 제동을 건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코레일의 감축을 용인하는 모습이다.

    기재부에 앞서 이미 예산 자체삭감을 했던 국토부는 코레일의 운행감축을 진작에 예상하면서도 눈치없는(?) 1월 강행만 탓하고 있다.


    ◇ 코레일 "벽지 노선 운행 절반 감축"

    20일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이 지난해 12월11일 벽지 노선 운행 열차를 줄이겠다며 국토부에 노선변경 인가 신청서를 냈다. 해당 노선은 경전선·동해남부선·영동선·태백선·대구선·경북선·정선선 등 7개 노선이다. 벽지 노선은 수입보다 비용이 2배 이상 드는 노선을 말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12월5일 정부의 공익서비스(PSO) 보상예산이 삭감됐다며 벽지 노선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벽지 노선을 운행하는 하루 112개 열차를 56개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정부 보조금 삭감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태도다. 운행 감축과 역 무인화 등의 효율화에도 코레일이 174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코레일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노인·장애인에 대한 무임운송·운임할인과 함께 수요가 적은 벽지 노선을 운영하고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 PSO 비용을 정부로부터 보상받아왔다.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의 2015년 벽지 노선별 손실액은 총 2175억원이다. 영동선이 618억원으로 가장 많고 동해남부선 550억원, 경전선 430억원, 태백선 336억원 등의 순이다. 2015년 손실보상액은 2168억원이다. 코레일이 실질적으로 본 손실은 7억원쯤이다.

    정부는 올해 PSO 보상예산을 2962억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 3509억원보다 547억원 줄였다. 특히 이 가운데 7개 벽지 노선 운영에 따른 손실보상액은 지난해 2111억원에서 1461억원으로 650억원을 삭감했다.

    일각에서는 코레일이 뼈를 깎는 자구노력보다 손쉬운 적자노선 감축을 선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자산 매각이나 방만한 조직 개편 등의 노력에는 소홀히 한 채 시장 독점 체제에서 안이한 대응을 되풀이해왔다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홍순만 사장이) 지난해 철도 파업 당시에는 국회의 중재안마저 거부하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벽지 노선 예산 삭감에는 싫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뒷짐만 졌다"며 "코레일의 이중성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 ▲ 국토부.ⓒ연합뉴스
    ▲ 국토부.ⓒ연합뉴스


    ◇국토부 "예산 줄어 불가피" vs 지자체 "공공성 외면"

    코레일이 노선별 철도 운행을 10% 이상 줄이려면 국토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일단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지난해 말 신청서를 반려했다. 겉으로는 코레일의 벽지 노선 감축에 제동을 건 것처럼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조금 지원이 줄었다고 바로 운행을 감축하지 말고 수송 수요와 대체 교통수단 등을 파악하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벽지 노선 열차 감축과 관련해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의 이번 신청 반려는 눈치 없이 발 빠르게 움직인 코레일의 신청을 다소 늦추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국토부의 반응은 원칙적인 거부가 아니라 재검토 요청에 가깝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신청 기한은 못 박지 않았다"면서도 "빨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벽지 노선 운행에 대한 입장은 점진적인 감축이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보조금 예산이 줄어 효율적인 운영의 필요성이 있다"며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대체 교통수단 투입 등을 고려해 일부 감축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런 견해는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나 국회에서 보조금을 삭감한 데 따른 불가피한 조처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올해 보조금을 셀프삭감해 기재부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손실 보전예산 2111억원에서 301억원이 줄어든 1810억원을 신청했다. 올해 총삭감액 650억원의 46%에 해당한다. 기재부가 심사하기도 전에 자체적으로 절반쯤을 삭감해 신청한 것이다.

    국토부는 벽지 노선 운행 감축이 해당 지자체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하다는 것도 잘 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벽지 노선 열차 운행횟수를 줄일 수도 있고 아예 없앤 후 대체이동수단을 투입할 수도 있다"며 "지자체에서 가만히 있겠나. 결사반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토부가 벽지 노선 감축이나 폐지까지 고려하는 데는 수익성이 낮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일부 노선은 하루에 20~30명만 이용하는 데 큰 전동차를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일부 지자체는 손실 보전금 일부를 부담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해당 지자체들은 정부가 공공성은 외면한 채 수익성에만 집착한다고 지적한다. 벽지 노선을 대국민 교통서비스가 아닌 수익성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견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교통 소통은 국민의 권리로,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며 "지자체가 한두 가구를 위해 벽지 버스노선을 운영하고 손실을 보는 운수회사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토부의 운영 방침은 국가의 의무를 내팽개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코레일은 수익을 내려고 공공기관의 책무를 지자체에 떠넘기겠다는 것인데,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부담만 가중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경남도는 지난해 12월 말과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국토부와 코레일에 열차 운행 증편을 건의한 상태다.

    경남도 관계자는 "(철도파업은 끝났지만, 차량 정비 문제로) 열차 운행이 정상화되지 않다 보니 지금도 교통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발생한다"며 "앞으로 주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열차 증편을 건의하고 있으나 아직 회신이 없다"고 난처해 했다.

    현재로선 벽지 노선 일부 감축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국토부가 지자체 등쌀에 코레일의 노선 변경신청을 반려해도 노선별로 10% 미만으로는 코레일이 신청만 하면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코레일이 신청 전에 (국토부와) 협의는 하겠지만, 10% 미만 범위에서 이뤄지는 조정은 어쩔 수가 없다"며 "신고 기준은 철도사업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자 마련된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