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고위 인사, 전 행장들에게 "이번에는 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취지 연락 정황법조계 "후보 발굴·검증 기능에 영향 줬다면 지배구조 취지 훼손 지적 나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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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둘러싸고 전·현직 경영진의 비공식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외이사 중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회장 후보를 심사·추천하는 구조임에도, 임추위 가동 이전부터 사실상 승계 구도가 일부 조정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금융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지난 10월 28일부터 임추위를 가동해 경영승계 계획에 따른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추위가 추천한 최종 후보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내년 3월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새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현재까지 압축된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정진완 우리은행장, 외부 인사 2명 등 총 4명이다.

    논란의 출발점은 임추위가 본격 가동되던 시기, 잠재적인 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일부 인사들에게 “이번에는 회장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연락이 있었다는 제보다. 복수의 제보에 따르면 우리금융 내 고위 인사가 과거 우리은행을 이끌었던 전 행장들에게 직접 연락해 회장 후보 도전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전 행장은 우리은행장 경력 등을 감안할 때 우리금융 회장 롱리스트에 우선 포함될 수 있는 인물들로 꼽혀 왔으나, 실제 이번 후보군에서는 제외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A 전 우리은행장도 이 같은 분위기를 에둘러 전했다. A 전 행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래 규정상으로는 (전 은행장이) 들어가게 돼 있는 걸로 알고 있었고, 저도 후보는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저는 롱리스트에 아예 처음부터 배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사 권유성 연락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노 코멘트하겠다”, “CEO 출신이 내부적인 것들을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만 답하며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피했다. 그는 “우리 그룹이 시끄럽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게 CEO 출신이 가져야 할 스탠스”라며 조직을 의식한 신중한 태도를 거듭 강조했다.

    우리금융 사정에 정통한 한 고위 관계자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전 행장들이 그룹 내 고위 인사로부터 ‘이번에는 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접 전화를 받은 당사자들은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외부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내부적으로만 ‘냉가슴 앓이’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다’는 식의 인식이 공유됐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직 행장들에게 출마 만류성 전화를 한 것으로 지목된 고위 인사는 임 회장이 취임한 이후 그룹에 합류한 인물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황이 사실일 경우, 단순한 개인 의견 전달을 넘어 회장 승계 구도와 후보군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공식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변호사는 “특정 인사가 잠재적 후보들에게 ‘이번에는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접촉했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약됐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전직 임원의 ‘고사 권유’ 자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임추위가 폭넓게 후보를 발굴하고 검토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 비춰 보면 공정한 후보 추천 절차를 저해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임추위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위원이 아닌 인사가 사전에 유력 후보들에게 ‘지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결과적으로 임추위의 후보 발굴·검증 기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그 과정이 조직적·지속적이었다고 판단될 경우 감독당국이 향후 검사 과정에서 ‘후보 추천 절차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훼손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현재로서는 제보와 정황만 있는 단계인 만큼, 실제 어떤 연락이 있었는지, 그로 인해 임추위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별도의 사실조사와 객관적 증거를 통해 추가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우리금융 고위 인사의 고사 권유 의혹과 관련해 “금융사 지배구조는 회사와 주주 등 시장 감시 메커니즘이 있고, 검사 과정에서 법령상 절차 위반이 확인되면 사후적인 조치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어서 위법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제기된 문제를 유념해 챙겨보겠다”는 입장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