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 발표 사흘만에 '수정론' … 졸속 설계 논란 확산 부처 자체 판단 아닌 李 대통령 질타에 정책 수정 나서 논란 커지면 잇단 재검토 … 땜질식 수습에 정책 신뢰 흔들
  •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연합뉴스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연합뉴스
    정부가 정책을 섣불리 발표한 뒤 반발 여론이 커지면 뒤늦게 손질하는 '선 발표 후 보완'식 정책 추진이 반복되고 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발표하고 논란이 커지면 땜질식으로 수습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일명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이다. 세제개편안을 내놓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가 내려지면서 대규모 손질이 예고됐다. 졸속 세제 개편 논란이 커지면서 세제개편안을 책임진 경제라인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역풍 맞은 ISA 개편에 … 한도 이월·만기 연장 '유지' 검토

    11일 관계부처와 업계 등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일반 ISA의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미사용 납입한도의 이월을 폐지하는 세제개편안에 대해 시장 반발이 커지자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ISA의 현행 납입 한도 이월과 무기한 만기 연장을 유지하되 부당하게 세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을 추려낼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조정을 검토 중이다. 

    앞서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개편안은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하는 대신 만기를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만기마다 세금을 정산하도록 했다. 연간 2000만원인 납입한도의 미사용분을 다음 해로 이월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 장기운용과 복리 효과가 줄어들고, 납입 한도 이월이 막히면서 소득이 불규칙한 가입자의 납입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재경부는 가입·연장 시 소득요건과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여부를 다시 심사해 가입자 간 과세 형평성을 높이고, 미사용 납입한도를 활용한 일시적 목돈 투자보다 적립식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 상황점검 회의에서 "정확하게 준비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며 전면 재검토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편안이 불과 사흘만에 재검토 수순을 밟은 셈이다. 

    여당도 기존 ISA를 현행대로 유지하되 생산적금융 ISA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물러섰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9일 "기존 ISA는 건드릴 필요가 없고, 생산적금융과 관련해 추가된 부분은 선택적으로 적용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축소됐던 ISA의 한도 이월과 만기 연장 혜택이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갈 전망이다. 다만 재경부는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절세 악용을 막기 위해, 가입 이후에도 세제 혜택 자격을 재점검할 수 있는 보완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일반형 ISA의 무제한 만기가 유지될 경우 생산적금융 ISA에 이보다 짧은 만기 최장 10년을 유지하는 방안 역시 재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증시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되는 생산적금융 ISA 취지를 고려하면 일반형 ISA보다 만기 조건이 불리할 경우 투자 유인이 떨어져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재경부는 조만간 ISA 개편의 보완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입법예고기간인 만큼 의견 수렴 중으로 보완 필요성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조만간 입장 표명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 ▲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주가 누르기 방지법·비거주 1주택 예외 잇단 수정안 시사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판단 기준의 실효성이 지적됨에 따라 규제 수위가 대폭 강화되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 대통령이 "본래 개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재검토를 주문하면서다. 이 역시 정책을 설계한 부처가 직접 문제점을 찾아 보완에 나선 것이 아니라 '윗선 지적'에 떠밀려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정부는 '주가 누르기' 기업 추정 요건으로 최근 13개 반기 중 12개 반기 이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나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한 경우를 규정했다. 최근 1년 동안 중복상장이나 교환사채(EB) 발행 등을 했거나 최근 3년간 시가 대비 주식 평가액이 30% 이상 하락한 기업도 대상이 된다. 이후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위적 주가 누르기로 인정되면 평가기간을 확대해 주식 가치를 재산정하게 된다. 

    이를 두고 구조적으로 저평가된 기업과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춘 기업을 구분하기 어렵고, 일정 기간에만 PBR을 관리하면 규제를 피해갈 수 있어 증시 부양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 올해 6월 코스피 상장사를 기준으로 정부의 장기 저PBR 요건을 충족하는 코스피 상장사는 80개사로 추정됐다. 반면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최초로 발의한 이소영 의원안은 PBR 0.8배 이하 기업에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적용해 대상 기업이 505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개편안은 법안 기교성만 부각되고 지배주주의 일반주주 권익 침해 방지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며 “대부분 대기업 및 중견기업은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이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나쁜 법안"이라고 직격하고, "바로잡겠다. 재정경제부는 정신 차리십시오"라며 주무부처를 향해 강한 질타를 쏟아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주가누르기 평가방법'에 대해 "필요하다면 전문가 토론회를 추가로 마련해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의견도 청취하겠다"며 "당초 제도 개편의 취지를 충실히 살릴 수 있도록 심사숙고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비거주 1주택자 보유세 인상안 논란도 마찬가지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이날 9시 기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에는 3800여건이 넘는 입법의견이 접수됐다. 특히 실거주 여부를 기준으로 1주택자의 세금 공제 기준을 달리하는 데 대한 반대와 함께 비거주 예외 인정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번 세제개편은 초고가·비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을 높이고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의 공제 제도가 기존 '보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골자다. 쟁점은 실거주 예외 인정 범위다. 정부안은 1주택자가 1년 이상 계속 거주하던 주택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다른 시·군으로 이전하면 해당 비거주 기간을 최장 3년까지 거주기간으로 간주하도록 예외를 뒀다. 

    비거주 예외 범위를 넓혀달라는 요구가 잇따르면서 정부도 시행령제정 과정에서 예외 사유와 적용 요건을 추가로 손질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구 부총리도 지난 7일 MBC 라디오에서 실거주 예외와 관련해 "취학·직장 변경·질병 등 불가피한 실거주 예외 사유는 최대한 국민 입장에서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장 3년으로 정한 인정 기간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예외가 있다면 국민 의견을 들어 추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육아·가족 돌봄이나 특수교육 등 비거주 1주택자 예외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른 시·군 이전', '1년 이상 선거주', '최장 3년' 등의 제한을 얼마나 유연하게 적용할지도 관건이다. 

    야당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일단 발표하고 국민이 반발하면 고치는 졸속 국정을 즉각 중단하라"며 "정책을 제대로 만들 능력도, 사전에 검증할 실력도, 실패를 책임질 용기도 없는 '3무(無) 국정'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오는 20일까지 입법예고가 진행된다. 이후 이달 27일 차관회의와 다음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9월 3일 이전에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국회 심의 과정에 따라 세부 내용은 추가로 조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