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태양광 잉여전력, 수도권行 송전망 충남 관통 계획에 반발 확산신계룡~북천안 등 345kV 노선 8개 지자체 통과… 최종 경과지 올해 확정서해안 HVDC까지 겹쳐 … 2038년까지 4개 노선 단계적 구축채수조 서울시립대 교수 "발전소 짓기 전 수요·계통부터 계산했어야"
  • ▲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 등 충북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가 21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비롯한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및 비수도권 송전탑 설치, 수도권 쓰레기 충북 반입 소각 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01.21. ⓒ뉴시스
    ▲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 등 충북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가 21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비롯한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및 비수도권 송전탑 설치, 수도권 쓰레기 충북 반입 소각 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01.21. ⓒ뉴시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호남에서 쏟아지는 잉여 태양광 전력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충청권을 관통하는 초고압 송전망 건설을 서두르면서, 전국 석탄화력의 절반을 떠안고도 정작 실익은 챙기지 못했던 충남을 중심으로 지역 반발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12일 관계 기관 등에 따르면, 한전은 충남 계룡 신계룡변전소와 북천안변전소를 잇는 '345kV 신계룡~북천안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23~2031년, 선로 길이는 약 62㎞다. 

    후보 노선이 지나는 지역만 대전 유성구·서구, 충남 계룡·공주·논산·천안, 충북 청주, 세종 등 8개 지자체에 걸쳐 있다. 한전은 지난해 11월 최적 경과대역을 확정했고 올해 안에 최종 경과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여기에 전북 신정읍과 충남 신계룡을 잇는 345kV 송전선로도 함께 추진 중이다. 호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신정읍~신계룡을 거쳐 북천안 방향, 즉 수도권 쪽으로 보내기 위한 계통 보강 작업이다.

    정부와 한전이 대규모 송전망 건설에 나선 배경에는 발전지역과 소비지역의 불일치 때문이다. 전남·전북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늘었지만 이를 소비할 대규모 산업시설도, 다른 지역으로 실어 나를 송전망도 부족한 상황이다. 태양광 발전량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기존 전력망이 이를 다 받아내지 못해 발전사업자의 출력을 강제로 제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서남해 대규모 해상풍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수도권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한전은 345kV 교류 송전망 외에도 서해안을 따라 호남 전력을 수도권으로 직접 끌어올리는 '서해안 HVDC(초고압직류송전) 에너지고속도로'까지 추진하고 있다. 

    4개 노선으로 구성되며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첫 사업인 새만금~수도권 구간은 원전 2기에 맞먹는 2GW 규모로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반발이다. 신계룡~북천안 노선의 경과대역이 구체화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충청권 곳곳에서 반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호남에서 출발한 '송전탑 반대 전국대행진'이 충남에 도착했다. 충남환경운동연합 등은 지난 10일 충남도청 앞에서 전국대행진 충남 구간 출정식을 열었다. 전국대행진은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을 출발해 광주·전북·대전을 거쳐 충남에 도착했으며 참가자들은 오는 14일까지 예산·서천·금산·홍성·당진·서산·보령·천안·공주·논산·부여 등 충남 11개 시·군을 돌며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들은 "충남은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전력 생산의 대동맥 역할을 해왔다"며 "전국 화력발전소의 절반 가까이가 충남에 몰려 있고, 도내에서 생산된 전기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으로 실려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충남에 이미 4000개가 넘는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있는데 한전이 345kV 신규 송전선로 10개 노선을 추가로 계획하고 있다"며 "한 지역에 송전탑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균형발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제시한 신규 노선은 신계룡~신정읍, 신계룡~북천안, 신계룡~신임실, 새만금~신서산, 북천안~신기흥, 군산~북천안, 신탕정~신판교, 신중부~신용인, 새만금~청양, 청양~고덕 등이다. 단체들은 이 노선들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전력 공급과 맞닿아 있다며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사업을 위해 충남의 농지와 마을, 산을 가로지르는 철탑 건설이 먼저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지방 분산이나 수도권 재생에너지 자체 확보가 이뤄지면 충남에 새 송전탑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에는 송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 절차 중단,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의 국가 전력망 정책 반영, 주민·전문가·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다.
  • ▲ 2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송변전선로 반대 광주·전남 대책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열고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상여 행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날
    ▲ 2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송변전선로 반대 광주·전남 대책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열고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상여 행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지역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송변전 노선 선정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2026.04.02. ⓒ뉴시스
    반발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산군에서는 이장단협의회와 환경운동연합, 농민회, 종교계·정당 등 25개 단체가 '예산군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세종에서는 지난해 11월 금남면·장군면 주민 100여 명이 한전 세종지사와 세종시청을 찾아 집회를 열었고, 세종시의회도 지난해 12월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의결했다. 

    공주시 정안면 주민들은 생태환경·건강권·재산권·교육환경 침해를 이유로 노선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며 청주시 옥산면 주민들도 지난달 27일 한전의 일방적인 경과지 결정에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채수조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 같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전력 정책의 순서가 뒤바뀐 데서 찾는다. 채 교수는 "전남·전북·광주에 태양광 설치용량이 10GW를 훌쩍 넘어섰지만, 호남에는 그 전기를 소비할 대규모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며 "최대 수요 피크가 10GW이니 영광원전 5.9GW 기저 전력만 빼면 여유는 5GW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낮에는 홍수처럼 전기가 남고, 송전망이 감당하지 못하면 발전 전기를 아예 차단해 버린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그 결과가 지금의 충남 관통 송전망 계획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제는 이 '홍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겠다며 충남을 관통하는 345kV 초고압 송전망을 더 건설하겠다고 한다"며 "발전소를 짓기 전에 누가 그 전기를 쓸 것인지, 기존 계통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송전망은 어디로 지나갈지부터 계산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라고 비판했다.

    충남의 반발이 유독 큰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충남은 당진·태안·보령을 중심으로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국내 대표 전력 생산지다.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1기 가운데 29기, 설비용량으로는 전국의 절반에 달하는 약 16GW가 충남에 몰려 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전에 따르면 2024년 충남의 전력자립률은 207.1%로 지역에서 쓰는 전력의 두 배 넘는 양을 생산했다는 뜻이다. 경북(228.1%), 전남(213.4%)에 이어 전국 최상위권이다. 반면 대규모 전력 소비지인 서울은 11.6%, 경기는 62.1%에 그쳤다. 이미 석탄발전으로 수도권 전력 공급 부담을 짊어져온 충남이, 에너지 전환 이후에는 다른 지역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선 부담까지 다시 떠안게 되는 구조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탈석탄 정책에 따라 충남 석탄화력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이어서 지역경제와 일자리 위축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발전공사 통합본사 충남도 유치 보령시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3일 한국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통합본사의 충남 유치를 정부에 요구했다. 

    추진위원회는 "대한민국 전력 생산의 핵심인 충남을 배제한 발전공사 통합은 지역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석탄화력 폐쇄는 지역경제 붕괴와 지방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 노동자 생계 대책,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등도 함께 요구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을 발전소와 소비지역의 공간적 불일치로 짚으면서도 정책 추진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발전소부터 지어놓고 송전망을 나중에 확보하다 보니 전력 비효율은 물론 지역 갈등까지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에너지 전환과 AI·반도체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만큼 전력망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남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도 송전망 부족으로 전기를 제대로 팔지 못한다는 불만이, 충청권에서는 다른 지역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또다시 송전탑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반발이 동시에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