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 자사주 549만주 전량 소각 … 발행주식 10.52% 규모유한양행도 자사주 4253억원 규모 소각 … 밸류업 동참나란히 실적 개선세 … 주주환원·상법 개정 대응 행보
  • ▲ 씨젠(왼쪽)과 유한양행 본사 전경. ⓒ각 사
    ▲ 씨젠(왼쪽)과 유한양행 본사 전경. ⓒ각 사
    상법 개정과 정부의 밸류업 기조 속에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장기간 보유해 온 자사주를 잇따라 소각하고 있다. 유한양행과 씨젠 등 실적 개선세를 보인 기업들이 수천억 원대 자사주 전량 소각을 단행하며 주주가치 제고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특히 과거에는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면서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보유 부담이 커지면서 소각과 처분을 둘러싼 기업들의 선택도 더욱 뚜렷하게 갈릴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씨젠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보통주 549만1592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발행주식 총수 5222만5994주의 10.52%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소각 예정일은 오는 31일이다.

    장부가액 기준 소각 규모는 약 1737억원이다. 씨젠이 과거 취득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없애는 방식인 만큼 이번 소각으로 1737억원의 현금이 새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소각 이후 씨젠의 발행주식 총수는 4673만4402주로 감소한다. 자사주가 사라지면서 기존 주주들의 전체 발행주식 대비 지분율은 그만큼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씨젠 관계자는 이번 자사주 전량 소각에 대해 "회사는 지속적으로 배당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주주환원정책을 추진해왔으며 이번 자사주 소각 결정 공시도 이에 따른 것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한양행도 지난달 대규모 자사주 전량 소각을 결정했다. 유한양행은 보통주 603만1820주와 우선주 3만2600주 등 총 606만4420주를 없애기로 했다. 이사회 결의 전일 종가를 기준으로 약 4253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최근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정부의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시장 밸류업 기조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보유한 자기주식을 영구적으로 없애 발행주식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할 경우 향후 시장에 다시 매각될 수 있다는 오버행 우려가 남지만 소각하면 해당 주식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에 따라 단순한 자사주 매입보다 주주환원 의지가 강한 조치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자기주식의 원칙적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도 기업들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취득한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규정하면서 장기간 자사주를 보유해 활용하던 기존 관행에 제약을 뒀다.

    다만 업계에서는 최근 움직임을 상법 개정에 따른 수동적인 대응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증시 밸류업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쪽으로 자본정책을 전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방법으로 현재 정부가 주주환원과 기업 밸류업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도 이 같은 기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금융당국이나 상법 개정에 단순 대응한다기보다는 친주주 정책을 강화하는 흐름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 실적 개선이 이끈 자사주 전량 소각 … "밸류업은 결국 본업에 달려"

    특히 씨젠과 유한양행의 경우 최근 호실적이 과감한 자사주 전량 소각을 가능하게 했다.

    씨젠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3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16억원으로 같은 기간 586.4% 급증했으며 당기순이익도 260억원을 기록해 흑자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급격히 위축됐던 실적이 비호흡기 진단제품의 성장에 힘입어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씨젠의 매출은 코로나19 진단 수요가 정점에 달했던 2021년 1조3708억원에서 2023년 3674억원까지 감소했지만 2024년 4143억원, 지난해 4742억원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와 성매개감염(STI), 소화기(GI) 진단제품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분기 HPV 제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3%, STI와 GI 제품은 각각 20.7%, 13.9% 증가했다. 비호흡기 제품군 전체 매출도 22.9% 늘었다.

    유한양행 역시 폐암 신약 '렉라자'의 글로벌 상업화 성과를 바탕으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2분기 연결 매출은 63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69억원으로 34.1% 성장했다.

    존슨앤드존슨(J&J)이 판매하는 렉라자의 유럽 출시 마일스톤 약 450억원과 로열티 약 70억원이 반영되면서 영업이익률도 10.5%까지 상승했다. 향후 렉라자 판매 확대에 따른 로열티 유입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현금창출력 개선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이번 자사주 소각을 지속 가능한 밸류업 정책으로 연결하려면 실적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량 소각과 같은 강도 높은 주주환원 정책은 결국 기업 실적이 뒷받침돼야 지속할 수 있다"며 "최근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기업들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향후 사업과 실적에 대한 자신감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결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기업의 펀더멘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밸류업이 지속되려면 소각이나 배당 같은 주주환원과 함께 매출과 이익 성장이 동시에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