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실리카 참여국에 中 협력 배제 요구, 수출통제 공조 확대 가능성삼성·SK 中공장 장비 매년 美 승인, SK 다롄공장 증설 첫 시험대 미중 매출 비중 삼성 61.6%·SK 88.7%,'진퇴양난'
  • 미국이 인공지능(AI)에 협력국에 중국과의 중복 협력 금지 경고를 보냈다. 이 같은 대중국 압박이 반도체 공급망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중국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매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1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6월 ‘AI 기회 성명’에 서명한 한국 등 35개국에 중국 주도 세계AI협력기구(WAICO)와 중복 가입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경고 서한을 준비하고 있다.

    초안에는 미국의 기대와 충돌하는 협의체와 ‘중복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WAICO 참여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지난달 29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AI 협력체 WAICO를 출범시켰다.

    팍스 실리카는 AI와 반도체 핵심광물 첨단제조 에너지 물류를 하나로 묶은 공급망 협력체다. 참여국 간 민감기술 보호와 수출통제, 투자안보 공조를 목표로 한다. 미국이 팍스 실리카 참여를 ‘약속’으로 규정한 것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와 기술 통제에서도 같은 편에 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중복 참여를 문제 삼은 만큼 향후 반도체 공급망에서도 보다 분명한 대중국 공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팍스 실리카의 수출통제 공조 기조가 BIS의 개별 수출허가 심사까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공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에 대한 장비·부품 반입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비허가는 상무부가 담당하지만 심사 사안에 따라 국무부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이 의견을 내는 부처 합동심사를 거칠 수 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미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폐지했다. 매년 필요한 장비와 부품의 반입 계획을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 연간허가제로 전환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2026년 반입분에 대한 허가만 확보해놓은 상태다.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첨단기술 접근권과 중국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장비허가를 동시에 지렛대로 쥔 셈이다. BIS는 VEU 폐지 당시 기존 중국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장비 반입은 허용하되 생산능력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허가는 내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규제가 신규 장비를 넘어 기존 서방 장비의 정비·수리·교체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다롄에서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사 중국 공장에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등 미국 업체의 식각장비가 대거 설치돼 있다.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곳은 SK하이닉스 다롄공장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자회사 솔리다임은 4년 동안 중단했던 다롄 2공장 투자를 재개했다. 이르면 오는 11월 장비를 반입해 내년 상반기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월 5만장 규모의 웨이퍼 생산능력이 추가되면 다롄 낸드 생산능력은 기존 월 10만장에서 15만장으로 50% 늘어난다.

    SK하이닉스의 상반기 지역별 매출은 미국 84조5648억원, 중국 32조4783억원으로 각각 전체의 64.1%와 24.6%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도 상반기 지역별 매출 258조5509억원 가운데 중국이 88조6004억원으로 34.3%, 미국이 70조6466억원으로 27.3%를 차지했다. 미중 합산 비중은 SK하이닉스가 88.7%, 삼성전자가 61.6%에 달한다. 두 회사 모두 미국의 장비와 기술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과 생산거점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양사가 미국산 장비 반입 중단에 대비해 중국 AMEC의 식각장비를 시험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양사는 관련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중국 장비를 검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국 기술통제 공조에서 이탈한 것으로 비칠 수 있고, 향후 BIS 장비허가 심사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