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욕조 설치 허용 행정예고 9일 만에 '재검토'책상 설치의무 없애고 개인취사시설 금지는 유지습기·곰팡이·임대료 상승 우려 … 野 "청년 조롱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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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들 사이에서 정부가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것을 두고 AI로 제작한 조롱성 '밈(Meme, 유행 콘텐츠)'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엑스(X) 갈무리. ⓒ뉴시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폐버스 청년주택' 제안에 이어 이번엔 정부가 고시원 개별실에 욕조 설치를 허용하려다 청년주거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재검토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가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지 9일 만이다. 정부와 여당이 충분한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면 철회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주거정책의 실효성과 정책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23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12일 고시원 개별실의 욕조 설치를 허용하고 책상 등 학습시설 설치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현행 기준상 고시원 개별실에는 취사시설과 욕조를 설치할 수 없다. 샤워부스만 허용되며 책상 등 학습시설은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개정안은 설치금지대상에서 욕조를 제외하고 취사시설만 남겼다. 책상 등 학습시설을 갖추도록 한 조항도 삭제했다. 욕조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자가 고시원 개별실에 욕조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내용이다.국토부는 최근 고시원이 학습·숙박시설을 넘어 1인 가구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태도다. 중소기업의 규제개선건의를 받아들여 고시원의 다양한 운영형태를 허용하고 화재 등 안전과 직접 관련이 없는 규제를 완화하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그러나 행정예고 이후 고시원 이용자와 청년층을 중심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완화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좁고 환기가 어려운 방에 욕조를 설치하면 습기와 곰팡이 등 위생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욕조 설치가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리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특히 욕조 설치는 허용하면서 개인취사시설 금지는 유지한 점이 논란을 키웠다. 고시원 거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욕조보다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취사시설과 환기·방음·화재 안전 개선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시원은 통상 방 하나에 침대와 책상, 수납시설 등을 배치하면 여유공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실제 고시원 크기와 이용자의 생활여건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욕조가 들어간 고시원 방을 풍자한 이미지도 확산하고 있다.한 시민은 "좁고 방음이 안 되는 닭장 방에 욕조를 넣으면 곰팡이와 위생 악화만 초래한다"면서 "좁은 방에 욕조를 넣을 게 아니라 청년들이 간단한 식사라도 직접 해결할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화재로 인한 인명·재산피해가 우려된다면 소방안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고 꼬집었다.결국 국토부는 21일 "행정예고 과정에서 고시원 이용자와 관련 협회, 언론보도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면서 욕조 설치 완화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2일 행정예고 이후 9일 만에 방침을 되돌린 것이다.다만 국토부가 재검토 대상으로 밝힌 것은 욕조 설치 완화규정이다. 책상 설치의무 폐지를 포함한 개정안 전체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해 최종 개정 여부와 내용을 결정할 예정이다.이번 논란은 민주당 황희 의원이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폐버스 청년주택' 제안과 맞물리면서 정치권으로도 번졌다.앞서 황 의원은 7일 폐기되는 버스를 개조해 대학가 청년에게 단기 주거공간으로 제공하는 '버스 하우스'를 제안했다. 정부 주도 주택공급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저소득 청년의 임시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하지만 청년 주거난을 질 낮은 임시 거처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여야에서 제기됐다. 온라인에서는 폐버스를 고급 아파트처럼 포장한 풍자 이미지가 잇따랐다. 결국 황 의원은 관련 글을 삭제한 뒤 "청년들이 현장에서 직면한 주거 문제의 엄중함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폐버스 청년주택'에 이어 '고시원 욕조'까지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은 여당과 정부의 청년주거정책이 현실과 괴리됐다고 직격했다.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청년 정책인지 청년 조롱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폐버스에도 욕조를 설치해주느냐'는 우스갯소리는 청년주거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냉소를 보여준다"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욕조 고시원이 아니라 더 나은 주거로 이동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라고 지적했다.다만 폐버스 청년주택은 여당 의원이 개인적으로 제안한 아이디어이고 고시원 욕조 허용은 중소기업의 규제개선 건의를 반영한 정부 행정규칙 개정안이라는 차이가 있다. 두 사안 모두 정식 청년주거대책으로 확정된 정책은 아니다.그럼에도 청년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양질의 주택공급과 주거비 부담 완화보다 열악한 주거공간의 활용방안이 먼저 드러났다는 점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국토부는 "정책 추진과정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완화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재검토 과정에서 욕조 설치 여부뿐만 아니라 취사와 환기, 방음, 화재 안전 등 고시원 거주자의 실질적인 요구를 얼마나 반영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