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추가세수로 미래대응기금 신설 … 채무상환·국채 발행 축소 기대에 변수국고채 10년물 4.37%대까지 상승, 美 장기금리 고공행진도 부담은행채 5년물 4.4% 육박·코픽스 3.18% … 주담대 금리 상승 압력가계신용 2019.8조 사상 최대 … 30조 대출 여력 늘어도 이자 부담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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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호황으로 불어난 세수가 국채 발행 부담을 덜어줄 것이란 채권시장의 기대가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신설로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장기금리까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확장재정 신호가 더해지면 국채와 은행채를 거쳐 2000조원 가계빚의 이자 부담까지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내국세가 최근 10년간 증가 추세를 웃돌 경우 초과분 등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해 청년·인공지능(AI)·지방·교육·인재 등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경우 내년 기금 재원이 100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세수가 좋을 때 재원을 비축해 성장동력에 투자하고 세수 부족기에는 일반회계를 보완하는 재정 안전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보는 대목은 기금 규모 자체보다 늘어난 세수의 사용처다. 당초 시장에서는 반도체 호황으로 세입이 크게 늘면 내년 국고채 발행 규모가 줄어 수급 부담도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실제 최근에는 내년도 총지출 규모에 따라 국고채 순증 물량이 올해보다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래대응기금은 이 같은 셈법에 변수가 됐다. 초과세수와 세계잉여금이 국가채무 상환에 쓰이면 향후 국채 발행 부담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상당 부분을 기금에 적립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면 그 효과가 줄어들 수 있어서다. 미래기금이 100조원의 신규 국채 발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수 호황이 곧바로 채무 축소로 연결될 것이란 기대에는 조정 요인이 생긴 셈이다.

    ◆ 국채 덜 찍을 줄 알았는데 … 초과세수 용처에 달라진 셈법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래대응기금 발표 직후인 21일 국내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3년물은 전 거래일보다 4.3bp 오른 연 3.854%, 5년물은 4.5bp 상승한 4.111%에 마감했다. 10년물은 5.3bp 뛴 4.376%, 30년물도 2.8bp 오른 4.703%를 기록했다. 금통위를 앞둔 경계감과 유가 등 기존 금리 상승 요인에 재정 운용 방향을 둘러싼 수급 불확실성까지 가세했다.

    24일 오전에는 일부 되돌림이 나타났다. 국고채 10년물은 4.36%대, 5년물은 4.10%대, 30년물은 4.69%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발표 직후의 상승세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관심은 하루 등락보다 내년도 예산과 국채 발행계획으로 옮겨가고 있다.

    해외 여건도 금리 하락을 장담하기 어렵게 한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에 나섰지만 미 국채 10년물은 지난 21일(현지시간) 4.73%, 30년물은 5.28%까지 상승했다. 24일 오전에도 10년물이 4.7%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재정 우려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금리를 밀어 올리는 상황에서 국내 재정 변수까지 겹치면 채권금리의 하방 경직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기금의 재원 활용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국민의힘은 초과세수를 별도 기금에 쌓으면 국가채무 상환 등에 활용하도록 한 기존 재정 원칙이 약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면서 세수 부족기에는 재정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정화 장치라고 맞서고 있다. 

    확장재정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내년 성장률이 3%에 가까워질 경우 800조원+α 규모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미래대응기금 역시 한꺼번에 사용할 경우 경기 과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성장세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재정까지 확장적으로 운용되면 물가와 시장금리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경계다.
  •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가운데)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가운데)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 국채에서 은행채로 … 대출 풀어도 이자는 무거워진다

    금융권이 주목하는 것은 시장금리가 가계로 전달되는 경로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 20일 연 4.398%까지 올라섰다.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정부가 대출 공급을 늘리더라도 실제 차주가 적용받는 금리는 쉽게 내려가기 어렵다.

    변동형 주담대도 이미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7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18%로 전월보다 0.13%포인트 올라 넉 달 연속 상승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인상한 데 이어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둔 만큼 고정·변동형 모두 금리 부담이 남아 있다. 시장금리 상승이 은행채를 거쳐 주담대로 전달되는 흐름은 이미 올해 들어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부담은 금리 상승을 받아내야 할 가계의 부채 규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신용은 2019조 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석 달 새 25조 9000억원 증가해 2021년 3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불었다. 가계대출은 1891조 3000억원으로 24조 9000억원 늘었고, 주택 관련 대출과 신용대출 등이 각각 12조원 넘게 증가했다.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1.5%에서 3%로 높여 금융권에 약 30조원의 추가 공급 여력을 열었다. 주택 실수요자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대출의 양은 일부 풀었지만 시장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차주가 체감하는 금융 여건은 달라질 수 있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문은 넓어져도 빌리는 가격은 오르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서는 재정정책과 한은의 긴축, 미국 장기금리 상승이 동시에 국내 시장금리를 자극할 경우 가계대출 규제 완화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미래기금 신설로 국채 발행 축소 기대가 약해지면서 내년 수급 전망도 달라졌다"며 "글로벌 장기금리까지 높은 만큼 은행채와 대출금리에도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