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수에 얹은 '820조 예산·150조 기금' 돈풀기 드라이브 청년·아동에 수십조원 현금 지원 … 고정 복지비 지속 압박3년 뒤 국채 이자만 50조 육박 … 국방예산 77% 맞먹는 수준세수 꺾이면 국채 발행·증세 불가피 … '재정준칙 법제화' 시급아르헨·베네수엘라의 교훈 … "위기의 최후 보루 '재정' 무너진다"
-
-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27년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데일리
[편집자주] 일시적인 세수 호황을 믿고 낭비성 현금 살포와 수백조원대 확장 예산 편성에 나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재정의 기본 원리를 잊은 대가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재정 비상 선언은 그 첫 신호탄이다. 본지는 3회에 걸쳐 지자체들의 선심성 지출 경쟁 실태를 파헤치고 오늘의 달콤한 세수 잔치가 다음 세대에게 넘길 거대한 빚의 청구서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짚어본다.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불어난 세수를 앞세워 내년도 총지출을 사상 처음 800조원 넘게 편성하고 여기에 아동·청년 현금성 지원만 수십조원을 얹는 '초슈퍼 예산·초슈퍼 복지' 드라이브를 동시에 걸고 있다. 총지출 820조원 안팎에 150조원대 '미래대응기금'까지 더하면 정부가 쥐고 쓰려는 재원은 1000조원에 육박한다.문제는 반도체 세수가 경기와 업황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변동성 재원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이런 불안정한 세수를 지속적인 재원으로 보고 지출부터 늘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번 늘린 지출은 경기가 꺾이고 세수가 줄어도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성 복지나 의무지출은 제도화되면 되돌리기 힘들어 장기적인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수가 늘 때마다 지출부터 확대하는 정부의 행태를 두고 '재정중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 ▲ 정부 예산안.ⓒ연합뉴스
◇금융위기 후 첫 두 자릿수 예산 증액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에서 2026년 국가채무가 1415조2000억원, 2027년 1532조5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26년 51.6%, 2027년 53.8%로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하지만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은 수출 호조로 세수 여건이 개선되면서 실제 국가채무비율이 기존 전망보다 낮아져 50%를 밑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를 두고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다고 보는 것은 '착시'라는 평가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결과라기 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분모인 GDP가 성장해 부채의 상대적 비중이 낮아진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강인수 숙명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는 분모인 명목 GDP 자체가 커진 만큼 지표상 국가채무비율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정부가 단 1년만 나라살림을 꾸리는 것이 아닌데,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 산업에 의존해 밝은 세수 전망만을 전제로 역대 최대 규모의 확장 예산을 짜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내년도 총지출이 사상 최대 규모인 '820조원+알파(α)'로 편성될 전망이다. 올해 본예산(728조원)에서 처음으로 총지출이 7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불과 1년 만에 다시 앞자리 수가 바뀌게 된다. 증가율도 올해(8.1%) 대비 큰 폭인 12%대로 급등할 전망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10.9%) 이후 처음으로 연간 총지출 증가율이 10%를 넘어서게 된다.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10년 내국세 추세치를 상회해 걷힌 '추가세수'를 활용해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올해와 내년 추가 세수를 감안하면 기금 규모는 150조원 안팎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청와대는 세수 변동에 따른 재정 충격을 완화하고 미래산업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향후 2~3년이 우리 경제 성장판을 열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며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및 인재 등 네 분야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국가재정법과의 충돌, 국회 재정 통제권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국가재정법 제90조는 세수 잉여금 발생 시 국가채무 상환과 교부세 정산을 우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 재원 조성 방식이 미래 세대를 위한 재정건전성 제고라는 법률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2~3년 내 수백조원의 재원을 소진하는 방식은 결국 현 정부 임기 내 모두 쓰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며 "진정한 미래 대응이라면 현세대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해당 기금이 운용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재정을 풀었는데 내년에도 잇달아 역대 최대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사실상 '재정중독'"이라고 비판했다. -
- ▲ 경기도 고양시 CHA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번 시작하면 줄이기 어려운 '복지', 부메랑될라한번 도입하면 축소하거나 폐지하기 어려운 현금성 복지정책 등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소다. 정부가 추진하는 '우리아이 자립펀드', '아동기본수당' 등이 대표적이다. 단기 경기 대응을 위한 일회성 지출과 달리 현금성 복지 정책은 한번 도입되면 제도 자체를 되돌리기 힘들어 지속적인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정부는 지난 28일 대통령 주재 '청년 예산 언박싱(UNBOXING) 2027' 행사를 열어 출생부터 교육·취업, 자산형성·주거·결혼까지 청년의 생애 단계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에만 43조300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지방우대지역에서 첫째로 태어난 아이는 34세까지 최대 1억9600만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원액이 지금보다 네 배 가량 늘어나는 것이다.대표적으로 내년에 신설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는 출생부터 만 18세까지 부모와 정부가 돈을 함께 적립하고 이를 주식·펀드 등 자본시장에서 장기 운용하는 방식이다. 소득구간에 따라 정부 매칭을 차등하는데 중위소득 50% 미만 가구의 아동에게 부모 납입 여부와 상관없이 18세가 될 때까지 매년 120만원씩 펀드에 적립한다. 중위소득 50~100% 가구는 부모 납입액에 정부가 1대2로, 100~150% 가구는 1대1로 연간 최대 100만원을 지원한다. 상품 만기 때 6000만~1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기존 월 10만원이던 아동수당은 '아동기본수당'으로 확대·개편된다. 0세부터 13세 미만(12세 마지막달)까지 매월 20만원을 현금 10만원, 지역사랑상품권 10만원으로 지급한다. 우대지역 아동에게는 매월 10만원을 추가해 현금과 지역사랑상품권을 각 15만원씩 총 30만원을 지급한다.아동수당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도 상당하다. 당초 내년 관련 예산은 2조4379억원으로 추계됐으나 출생아 수 회복세와 지급 금액 확대를 고려하면 실제 소요액은 5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관련 예산 덩치가 단기간에 두 배 이상 커지게 됐다.여기에 0~1세 아동 중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는 경우에는 월 3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지방우대지역의 0~1세 아동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양육하면 추가 지원금 월 30만원까지 더해 12세까지 최대 54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아울러 아이맞이지원금을 신설해 첫째·둘째 등 출생 순위와 거주 지역에 따라 총 1000만~2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이처럼 정부가 저출생 대응 등을 명분으로 새로운 지원 제도를 도입하고 지원 규모도 가파르게 확대하면서 미래 재정 부담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당장은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늘어 재원 마련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반도체 사이클이 꺾여 세수가 줄어들면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복지비가 재정에 상당한 충격파를 줄 수 있다.결국 현재의 재정지출 확대가 미래세대에 어떤 청구서를 남길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지출을 동시다발적으로 키우게 되면 세수 감소 국면에서는 이미 도입한 지원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 국채 발행이나 증세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호황기에 복지를 과도하게 늘리면서 성장 기반을 훼손한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베네수엘라는 국영 석유기업의 수익을 기술 개발 대신 복지에 쏟아부어 석유 생산 능력이 빠르게 후퇴했고, 아르헨티나 역시 원자재 호황기 동안 과도한 복지지출을 이어가다 2018년 재정 적자가 GDP의 7%에 육박하며 현재까지 23차례나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이재명 정부 들어 국채 이자만 30조원을 웃도는데 3년 후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약 65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3년 뒤에는 국방예산의 무려 77%에 해당하는 규모를 국채 이자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 ▲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재정준칙 법제화 … 통화·재정정책 엇박자 바로 잡아야"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정 여력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확장재정에 제동을 걸고 재정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본다. 재정준칙은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한 수치화된 목표를 설정해 정부의 재량적 재정정책에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재정 운용 체계다.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를 제외한 36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안정·성장협약(SGP)으로 불리는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은 재정적자는 GDP의 3%, 부채비율은 60%를 초과하는 회원국에 대해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은 1986년에 재정수지준칙을 먼저 시행하고 1990년에는 지출준칙을 추가 도입했으며 일본도 1947년부터 재정준칙을 명시했다.홍기용 교수는 "정권을 잡은 뒤 지지율이 흔들리면 돈을 풀어서라도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재정준칙은 이같은 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정부가 정치상황 등에 따라 씀씀이를 고무줄처럼 늘리지 못하도록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부가 확장재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정책 엇박자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확장재정은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인 반면 긴축적 통화정책은 금리를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줄여 경기 과열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재정과 통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정책 효과가 반감되거나 경제 불확실성만 키울 수 있다. 마치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강인수 교수는 "유동성 확대에 따른 고환율은 수출 대기업에는 긍정적일지 몰라도 고물가로 서민층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려 수혜계층과 피해계층 간 괴리가 더 벌어질 것"이라며 "현 정부가 민생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고환율이 고착화되면 결과적으로는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효과만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재정과 통화정책은 각각 고유 목적이 있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만큼 정책 간 상충을 최소화하고 예산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