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대금 환전 아직 본격화 안 돼 …엔화 동조 균열에 추가 절상 여력" 환율 13개월 만에 최저치 … IIF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돌아갈 수도"
  •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수출 호조와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원화가 한층 더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밀려난 가운데, 그동안 굳건했던 엔화 약세 동조 흐름마저 흔들리면서 원화 가치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 25일 내놓은 '한국 원화에 대한 더 밝은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까지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원화 추가 강세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우선 보고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경상수지 흑자가 커졌음에도 원화가 오히려 약세를 면치 못했다고 짚었다. 엔화 동조, 거주자의 해외 투자 확대,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가 겹친 탓이다. 특히 자동차·기술 제품 등 수출 품목이 겹치는 일본의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한국 수출 경쟁력이 훼손될 것으로 본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투자를 주저하면서 원화와 엔화가 함께 약세를 보이는 흐름이 굳어져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흐름에 균열이 간 건 지난 7월부터다. 원화만 유독 큰 폭으로 절상되기 시작했는데, 보고서는 그 계기로 지난 6월 말 발표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국내 반도체 시설 투자 계획을 꼽았다. 두 기업이 해외 투자를 위해 수출대금 상당액을 해외에 남겨둘 것이라던 시장의 기대가 국내 투자금 조달을 위해 원화로 바꿔올 가능성이 커지는 쪽으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실제 환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시장에 자리 잡은 이 기대감만으로도 앞으로 수 분기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빚투'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면서 서학개미발 해외 투자 유출도 지난해보다 잦아들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구체적 목표 환율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보고서는 원화가 코로나19 여파가 강했던 2020년 초 수준까지 돌아갈 수 있다고 봤다. 반도체 기업의 수출대금 환전과 해외 투자 유출 억제 규제의 효과가 환율에 아직 다 반영되지 않은 만큼, 이런 자본 흐름이 뚜렷해질수록 팬데믹 이후 벌어진 명목실효환율 절하폭이 상당 부분 되돌려질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원화의 대외 구매력을 보여주는 명목실효환율은 2020년 100에서 계속 낮아져 최근 80대 중후반에 머물러 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2020년 연평균(주간거래 종가 기준) 1180.1원에서 지난해 1421.97원까지 뛰었고, 올해 평균은 지난 28일 기준 1475.92원이다.

    한미 금리차 0.75%p로 … 3년 8개월 만의 최소폭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건 시장 요인만이 아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월에 이어 8월에도 기준금리를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보다 먼저 긴축 속도를 높이면서 한국(연 3.00%)과 미국(연 3.50~3.75%)의 정책금리 격차는 0.75%포인트(P)로 좁혀졌는데, 2022년 11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작은 격차다.

    이런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원달러 환율은 한 때 1370원 선까지 다가서며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7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간담회에서 "환율이 예전보다는 안정됐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이번 금리 인상으로 원화가 더 강해질 여지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화가 더 강해지는 게 인플레이션 제약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통화 정책의 선제적 대응을 통해 추가 강세로 갈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 외환당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27일 의회 서한에서 지난달 이례적으로 엔화 매수 개입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며 "일본은 미 국채의 주요 보유국"이라 "엔화 시장이 무질서해지면 강제적인 포지션 청산이 촉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통화의 급격한 약세를 미 당국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7월 이후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진 만큼 당분간은 숨 고르기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SK하이닉스의 ADR 자금 유입이 마무리되더라도 한미 통화정책 기조와 삼성전자 등의 주주환원 확대, 역대급 경상수지 흑자 같은 원화 강세 요인들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환율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급 개선과 주요 기업 수출 호조, 한미 금융당국의 정책 결정 차이가 상대적으로 원화 강세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1300원대 초중반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