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발적 출연만으로 목표 재원 마련 못하자 재정 투입구조적 해법 대신 세금으로 부족분 보전 … "상생기금 맞나"CPTPP 가입 추진 앞두고 농민 달래기용 아니냐는 지적도
  • ▲ 누렇게 익어가는 벼.ⓒ연합뉴스
    ▲ 누렇게 익어가는 벼.ⓒ연합뉴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무역이득공유제 대안으로 도입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정부가 처음으로 2000억원을 출연한다. 민간기업의 자발적 기부금을 재원으로 한 기금이 당초 목표인 '매년 1000억원씩·10년간 1조원'에 크게 못 미치자, 정부가 2030년까지 부족분 7000억원을 전액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민간기업의 참여가 저조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 재정으로 기금을 채우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기업의 자발적 출연을 전제로 설계된 기금에 국민 세금이 투입되면서 제도 취지가 퇴색하고, 기업의 추가 출연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CPTPP는 무엇보다 농축수산물 시장 개방 여파가 큰 만큼, 농업계 반발을 완화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금 2000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정부 출연금이 투입되는 첫 사례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당초 10년간 1조원 조성을 목표로 했지만 민간 출연액은 목표의 32% 수준인 3200억원에 그친다. 그동안 FTA로 인한 시장 개방의 수혜와 직접적인 관련이 크지 않은 공기업들이 주로 출연해 사실상 민간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정부는 민간 출연으로 채우지 못한 재원을 재정으로 보완하기로 했다. 내년 2000억원을 우선 투입하고 2030년까지 나머지 5000억원을 순차적으로 한시 출연해 농어촌 교육·장학과 복지사업, 지역개발·활성화, 농수산물 생산·유통·판매 등 공동협력 사업 등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사업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수행하며, 정부는 한시적 출연을 위해 관련 법률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예산안 반영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약 7000억원을 정부가 책임지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이 대통령은 "농민에게 1조원을 약속했고 세수 상황도 괜찮은 편이니까 정부가 대신 책임지는 방법을 강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민간 출연 기금의 목표 미달분을 정부가 대신 채우면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추가 출연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농식품부도 이를 감안해 세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해 민간출연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나, 민간기업의 실질적 참여를 견인할 만한 실효성 있는 유인책이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출연금의 구체적인 사용 범위와 관리·운영 체계는 재정당국 및 전문가들과 추가 논의를 거쳐 정할 계획이다.

    농업계에서는 정부 출연이 결정된 만큼 기금의 재원별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 출연금과 기업 출연금의 활용을 목적에 따라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정부 출연금이 기업 참여를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정부 출연금은 기업의 참여만으로 추진하기 어렵고 안정적 재원이 필요한 장기·지속 사업에 투입하고 기업 출연금은 기업 친화적 사업 등에 투입해 양쪽이 역할을 나눠 함께 가는 방향으로 재원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현재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사업 범위가 폭넓게 설정돼 있는데, 재정 투입이 이뤄지는 만큼 사업이 당초 기금 취지에 맞게 집행됐는지 점검하는 사후 모니터링과 성과 검증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성명서를 통해 "기업 출연금과 정부 출연금의 운용을 구분해야 한다"며 "정부 출연금은 농업⸱농촌의 피해와 현장 수요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농정 당국이 기금 운용에 대한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농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 재정 투입을 두고 CPTPP 가입 추진에 따른 농업계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구심도 나온다. CPTPP 가입이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농업계의 반발이 큰 만큼 농어촌 지원 재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CPTPP 가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농축수산업계를 달래기 위한 선제적 대책 차원에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재원을 마련한 것 아니겠느냐"며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당초 목표에 미달했다는 지적을 불식하고 향후 시장 개방에 따른 반발을 줄이려는 목적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