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결제주기 단축, 시스템 전면 개편 필요결제 오류 수정 시간 촉박, 운영상 실패 가능성T+2 완충시간 부재시 외국인 배분·환전·결제 부담 급증한미 13시간 시차 … 야간 인력·비용 커질 듯李 서두르라 압박에 거래소·예탁원 10월 로드맵 발표
  • ▲ ⓒ금융투자협회. 국내 개인투자자와 글로벌 투자자 증권 결제 플로우.
    ▲ ⓒ금융투자협회. 국내 개인투자자와 글로벌 투자자 증권 결제 플로우.
    이재명 정부가 주식시장 결제주기를 T+2에서 T+1로 앞당기기 위해 속도를 내면서 증권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과정에서 불거졌던 '졸속 추진' 논란이 이번에도 반복될 경우 결제 실패와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국인은 시차와 환전, 펀드별 배분, 글로벌 수탁은행과의 결제 지시까지 맞춰야 해 준비 기간이 부족할수록 비용과 운영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T+1 전환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한국만 서두르기보다 홍콩·일본 등 경쟁 시장과 보조를 맞추고 충분한 시스템 정비와 통합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전날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T+1일) 심층 토론회’에서는 T+1 전환의 실무 부담과 해외 투자자에게 미칠 영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현재 국내 주식은 거래 체결일로부터 2영업일 뒤인 T+2에 주식과 대금이 최종 결제된다. 이를 T+1로 단축하면 투자자는 매도대금을 하루 빨리 받을 수 있고 결제 과정에서 자금이 묶이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결제주기가 시장 인프라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만큼 단순히 날짜 하나를 줄이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시장의 청산·결제 시스템과 수탁은행, 펀드, 예탁결제 업무 등이 T+2를 전제로 수십 년간 구축돼 있어 결제주기를 변경하면 관련 제도를 동시에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제는 일부 증권사만 먼저 준비한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모든 회원사와 금융기관이 연결돼 있는 만큼 한두 곳에서 결제 불이행이 발생하더라도 시장 전체의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토론회에서도 "시장이 계속 달리는 상황에서 주춧돌을 갈아 끼우는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다. 국내 개인투자자는 증권사 계좌에 원화와 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매매와 결제가 대부분 일괄 처리된다. 반면 글로벌 투자자는 외국계 증권사와 글로벌 수탁은행, 국내 보관기관,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거래 과정에 차례로 개입한다.

    외국계 운용사가 여러 펀드의 주문을 한꺼번에 낸 뒤 체결이 끝나면 펀드별 물량을 다시 배분해야 하고, 이후 글로벌 수탁은행이 보낸 결제 지시와 예탁결제원의 배분 내역을 국내 보관기관이 맞춰보는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 오류가 있으면 다시 확인해야 하고 매수 거래는 원화를, 매도 거래는 주식을 확보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현행 T+2에서는 이를 처리하기 위한 T+1 하루의 완충 시간이 있지만 결제주기를 T+1로 줄이면 이 과정이 사실상 거래 직후부터 시작돼야 한다.

    시차도 문제다. 뉴욕과 서울은 13시간의 시차가 있어 국내 장이 오후 8시까지 이어질 경우 뉴욕 투자자는 현지시간 오전 7시까지 거래한 뒤 곧바로 거래 확인과 펀드별 배분, 환전, 결제 지시를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국내 원화시장의 유동성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돼 있어 환전 비용까지 높아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T+1 도입 이후 글로벌 투자자의 시스템 투자와 야간 인력 운용, 환전과 사전 자금 확보 비용이 동시에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주식시장인 데다 달러가 기축통화여서 해외 투자자가 미국의 결제 체계에 맞춰 들어오는 구조다. 반면 한국 증시는 외국인이 시장에서 약 30%를 차지하는 만큼 투자자의 편의와 접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결제주기 단축 과정에서는 일정 수준의 결제 실패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행 국내 시장은 결제 실패를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관리하고 있지만 T+1로 전환하면 오류를 수정하거나 부족한 자금·주식을 조달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업무 처리 지연 등에 따른 운영상 결제 실패 가능성은 현재보다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금융회사 부실이나 시장 실패로 볼 것인지, 정상적인 시장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인식할 것인지다. 업계에서는 T+1 시대에는 결제 실패 자체를 무조건 없애기보다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부족한 자금이나 증권을 조달해 문제를 해소하는 체계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렇다고 T+1 도입을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는 입장도 적지 않다.

    미국·캐나다·멕시코는 이미 T+1로 전환했고 유럽과 스위스, 홍콩 등 주요 시장도 결제주기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시장이 T+1로 바뀐 상황에서 한국만 T+2를 유지할 경우 국내외 투자자의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하루 더 묶이는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증권업계가 강조하는 것은 ‘도입 여부’보다 ‘시점’이다.

    한국만 다른 아시아 시장보다 먼저 치고 나갈 경우 글로벌 투자자가 비용 부담이 낮은 일본이나 홍콩 등으로 투자 비중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늦어도 글로벌 결제 체계와 엇박자가 날 수 있다. 결제주기 단축은 선도적으로 먼저 도입한다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제도가 아니라 주요 시장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핵심 역시 ‘속도’보다 ‘예측 가능성’이다. 제도를 갑자기 바꾸기보다 시장 참가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발표 이후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한국의 결제 업무 자동화 수준이 미국이나 홍콩보다 낮다고 평가하고 있어 자동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은 현재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을 오는 10월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제도 개선과 시스템 개편, 통합 테스트 일정 등이 담길 전망이다. 이후 시장 참가자의 의견과 홍콩 등 경쟁 시장의 전환 일정을 반영해 최종 시행 시점을 결정할 계획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T+1은 결국 가야 할 방향이지만 결제주기는 시장 전체를 떠받치는 인프라여서 정책적 의지만으로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외국인 투자자의 시차와 환전, 시스템 비용을 충분히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만 서둘러 전환하면 오히려 시장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