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건보료율 7.19% 올해와 동일 … 보장성 확대엔 연 8000억의료개혁 반영 시 건보 준비금 2029년 소진 전망지역·필수의료 수가 인상 불가피 … 지속가능성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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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2027년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와 같은 7.19%로 동결했다. 대신 보장성은 더 넓힌다. 중증·희귀난치 환자 등 197만명을 대상으로 연간 8000억원 규모의 지원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더 걷지는 않으면서 더 쓰겠다는 선택이다.
- ▲ ⓒAI 생성이미지
건보료율을 인상하지 않은 핵심 근거는 건강보험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됐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은 최근 5년간 당기수지 흑자를 이어왔고 약 3.5개월분의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 정부지원도 올해보다 1조1000억원가량 늘어난다.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임금과 성과급 증가가 보험료 수입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이번 결정에 반영됐다.문제는 지금의 재정 여력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느냐다. 보험료율을 묶어둔 채 보장성과 의료개혁에 들어가는 지출을 계속 늘리려면 안정적인 재원 확충이 뒤따라야 한다. 중장기 전망을 보면 어둡다.지난 6월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을 반영해 건강보험 재정을 추계했다. 의료개혁 정책을 반영하지 않아도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누적 준비금은 2031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 필수의료 수가 개선 등 의료개혁에 투입되는 돈까지 계산에 넣자 준비금 소진 시점은 2029년으로 2년 앞당겨졌다. 향후 10년 누적 적자 역시 의료개혁을 반영하지 않은 경우보다 27조8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간병비 급여화와 상병수당 제도화 등 앞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 굵직한 정책의 재정소요는 이 계산에 모두 들어간 것도 아니다.더 눈에 띄는 것은 계산의 전제다. 예산정책처는 2027년과 2028년 건강보험료율이 각각 약 1.43%씩 인상되고 이후에도 일정 수준 오를 것으로 가정했다. 2032년에는 현행 법정 상한인 8%에 도달하는 시나리오였다. 보험료가 계속 오른다는 가정에서도 2029년에 준비금이 바닥나는 계산이 나온 셈이다. 그런데 그 첫해인 내년도 보험료율부터 7.19%로 묶였다.예산정책처의 당시 추계에는 최근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성과급 증가와 이에 따른 보험료 수입 확대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이번 동결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경기 호황이 건강보험의 장기 구조까지 바꿔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이런 재정 전망 속에서 새로 추가되는 건강보험 지출은 적지 않다. 건보료율 동결과 동시에 내놓은 보장성 확대 방안에 따르면 희귀·중증난치질환자의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은 현행 10%에서 오는 12월 7%, 내년 상반기에는 5%까지 낮아진다. 제1형 당뇨병 환자 중심이던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자동주입기 지원은 중증 제2형 당뇨병 환자까지 넓어진다. 65세 이상 완전 무치악 환자도 임플란트 2개까지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된다.하나하나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러나 한번 건강보험 안으로 들어온 급여와 지원은 매년 반복되는 지출로 남는다. 결국 얼마나 더 지원할 것인지와 함께 그 비용을 장기간 감당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우리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고령층이 늘면서 만성질환과 입원·수술 등 노인의료비 지출은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장기화하면서 건강보험료를 낼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돈을 내는 사람은 줄고 의료비를 더 많이 쓰는 인구는 늘어나는 셈이다. 여기에 고가 신약과 첨단치료가 계속 등장하면서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 간 간극은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일선 의사들이 보험료율 동결에 우려를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에 더해 상병수당과 간병비 등 상당한 건보재정이 필요한 정책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며 "안정적 재원 마련 없는 보장 확대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의료계가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필수의료와 맞닿아 있다. 무너지는 응급실과 분만실, 소아진료를 살리려면 적정한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증·응급수술을 맡은 병원이 손해를 보면서 버텨온 구조를 바꾸려 해도 수가가 따라가야 한다.정부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는 1조2600억원대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새롭게 담겼다. 지역 의료인력 확보와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 등 지역거점 의료기관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재정을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특별회계는 건강보험과는 엄연히 다른 국가재정이지만 지역·필수의료가 특별회계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정부가 시설과 인력에 국비를 넣어도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는 순간부터 건보 재정의 문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의료를 정상궤도로 올리려면 지속적인 건강보험 보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쓸 곳은 늘어나는데 앞으로 재정을 어디에서 계속 마련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보험료를 올리면 가입자가 부담스럽다. 급여를 줄이면 환자가 반발한다. 국고지원을 늘리면 결국 세금의 문제로 돌아온다. 정치적으로 편한 선택지는 어느 쪽에도 없다. 그렇다 보니 보험료는 일단 묶고 보장은 하나씩 더하는 방식이 가장 무난해 보일 수 있다. 지금은 준비금도 있고 경기 호황에서 나오는 추가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하지만 한번 건강보험 안으로 들어온 혜택을 다시 걷어내기 쉽지 않다. 이는 반복되는 건보 재정 지출이 된다. 반면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일은 몇 년 지원하고 끝낼 사업이 아니다. 응급실은 계속 열려 있어야 하고 산모를 받을 분만실과 중환자를 수술할 의사도 남아 있어야 한다.5년, 10년 뒤에도 필요한 곳에 쓸 재정을 남겨두는 일은 당장 비판을 받더라도 감수해야 할 결정이다. 과연 이런 상태로 붕괴 직전의 지역·필수의료를 유지하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