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새벽배송 옥죄는 산안법 추진 … 사실상 '주 30시간' 획일적 규제쿠팡기사 98% "월 12회 제한 반대" … 줄어든 수입에 'N잡 몰리기' 우려제조·유통·경비 전반 확대 적용 … 대형마트 규제 완화 추진 이력 '눈길'
  • ▲ 야간근로 제한 이미지 ⓒ챗GPT
    ▲ 야간근로 제한 이미지 ⓒ챗GPT
    야간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근무시간과 횟수를 법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새벽배송 규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근무일 축소가 곧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안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9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쿠팡노동조합과 비노조택배연합,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전날 공동성명을 내고 "건강 보호라는 명분으로 일할 권리를 제한하고 그에 따른 소득 감소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진정한 보호가 아니다"라며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를 포함해 연속 7시간 이상 이뤄지는 작업을 야간작업으로 규정한다. 야간작업은 하루 최대 10시간으로 제한하고, 1주 단위로 평균해 하루 8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연속 야간작업은 최대 3일, 한 달 야간작업은 최대 12회로 제한한다. 근무가 끝난 뒤에는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하고, 3일 연속 야간작업을 한 경우에는 11시간에 더해 24시간 이상을 추가로 쉬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야간작업은 주 최대 30시간으로 제한되는 셈이다.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법안 발의의 주요 논거다. 국제암연구소는 생체주기 교란을 수반하는 야간 교대근무를 인체 발암 추정 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박 의원은 법안 발의 당시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야간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간노동 현장에서는 근무시간과 횟수를 일률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실질적인 건강 보호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택배 업무로 얻는 소득이 줄면 대리운전이나 배달 등 다른 야간 일자리를 병행하게 돼 오히려 이른바 'N잡' 노동과 과로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노조 등은 공동성명서에서 "법으로 일할 시간을 제한한다고 월세와 대출 원리금, 자녀 학비와 생활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가가 근무시간을 강제로 줄인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대책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 쿠팡 배송 트럭 ⓒ연합뉴스
    ▲ 쿠팡 배송 트럭 ⓒ연합뉴스
    법안이 택배업을 넘어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점도 논란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물류와 배송뿐 아니라 24시간 가동되는 제조업과 편의점, 보안·경비, 숙박업 등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의료·보건·교통 등 일부 업무를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직종에 따라 건강권 보호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공동성명에 참여한 단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택배 사회적 대화 참여를 요구했지만 민주노총의 반대로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야간노동 종사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규제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며 "공식 대화기구에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제 여당과 함께 새벽배송 규제에 동조 목소리를 내온 민노총 소속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택배기사는 전체 직원 2만5000명 중 1.2%인 300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가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며 업계 전반에 미칠 규제 정책을 요구해왔던 셈이다. 

    반면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배송기사 33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8%가 월 12회 제한에 반대했고, 97%는 작업시간이 제한되면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직 배송기사 대부분이 반대하는 법안을 거대 노조에 소속된 일부가 밀어붙이고 있다"며 "말로는 민생을 외치지만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는 정치 논리에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업계는 규제가 현실화하면 서비스 운영비도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정 야간조 운영이 어려워지면 동일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교대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고, 야간 할증보수와 분류 전담인력 비용 등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상품학회는 야간배송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에서 48시간으로 줄일 경우 추가 인력 3750명과 기존 기사의 소득 보전 등을 가정하면 월 369억원, 택배 한 건당 1061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규제 논의의 일관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당정이 쿠팡 등 이커머스 기업의 새벽배송에 대해서는 노동자 건강권을 강조하면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추진한 것을 두고 적용 대상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쿠팡노조 등은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대신 특수건강검진 확대와 유급 휴식권 보장, 인력 확충, 작업장 안전설비 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소득을 줄이지 않으면서 야간노동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제도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 단체는 "건강을 해치며 무한정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며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되 건강을 지켜준다는 이유로 생존을 위한 일자리와 소득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