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등 지방 이전 반대 투쟁에 '합법적 명분'민간산업 인력 재배치까지 파업 리스크 확산 우려국정과제 추진 '대형 암초' 직면 … "모호한 법 고쳐야"
  •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4일 서울 광화문역 주변에서 정부의 국책은행 지방 이전 추진 방침에 반대, 주4.5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개최한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4일 서울 광화문역 주변에서 정부의 국책은행 지방 이전 추진 방침에 반대, 주4.5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개최한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진 기자
    공공기관 지방 이전까지 노조의 교섭·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공식 해석이 나오면서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기관 이전이라는 경영 판단 자체는 쟁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에 따른 배치전환과 근무지 변경 등 근로조건의 변화는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곳의 이전을 추진하는 정부로서는 노조의 교섭 요구와 쟁의 가능성을 떠안게 된 셈이다. 특히 같은 논리가 민간기업의 대규모 사업장 이전이나 인력 재배치에도 적용될 수 있어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의 모호한 규정이 정부 스스로 추진하는 정책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노동부는 최근 국회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의 서면 질의에 대해 "공공기관 이전으로 인력 운용 계획 등이 수립 중이거나 결정된 사실이 확인되는 등 근로조건의 변동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해당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단체교섭 또는 노동쟁의 대상에 해당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3일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을 통해 공장 신설이나 이전 등 사업주의 경영상 결정 자체는 의무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원격지 이전에 따른 후속 조치로 배치전환과 근무지 변경 등이 불가피해지고, 이것이 노동자의 주거·가족생활 등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면 노조의 교섭 요구 및 파업 등 쟁의 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노동부의 이 같은 해석은 현재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의 지방 이전을 추진 중인 정부에 곧바로 정치적·법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사 이전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에 대한 배치전환과 근무지 변경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런 입장을 근거로 기관 이전에 따른 실제 지방 발령과 배치전환이 가시화되는 국면에서 대규모 교섭과 쟁의에 돌입할 수 있는 법적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기관장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될 수 있어 사실상 사측의 일방적 이전 추진이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노조와 공공부문 노동계는 이미 "숙련 인력 이탈과 경쟁력 훼손을 초래한다"며 지방 이전 반대 총파업과 탄원서 제출 등 강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민간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대규모 투자가 진행 중인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공장 신설 자체는 회사의 경영 판단이라 하더라도,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숙련·연구 인력을 원격지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의 교섭과 파업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 

    경영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정리해고나 인원 감축이 수반되지 않는 통상적인 배치전환까지 교섭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기업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노동부는 "사업장 이전에 따른 원격지 근무지 변경은 노동자의 삶의 기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노사가 충분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 개정 노조법의 취지"라며 "단순히 이전 저지 자체를 목적으로 한 파업은 허용되지 않으며, 대화를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국정과제로 밀어붙이는 현 정부가 노란봉투법의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민간 기업은 물론, 스스로 정책 집행의 발목을 잡았다는 '자충수' 비판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전 자체는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노동부 해석인데, 지방 이전이라는 것 자체가 통상적인 의미에서 근로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표현이 지금처럼 모호하면 노조가 이 지점을 파고들어 계속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