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국에 짓지 않으면 관세" 압박, AI 데이터센터發 전력망 난제용인, 10GW 이상 전력 필요 … 한전 25조원 전기료 선납 제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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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HBM4 제품 사진ⓒ삼성전자
미국의 반도체 관세 압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 확대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정작 미국 현지에서는 전력망이 새로운 투자 걸림돌로 부상하고 있다.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이 폭증하면서 대규모 전력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고 기존 전력망의 접속 대기와 송전 인프라 부족이 심화하면서다.국내에서도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한국전력의 재무 여력이 악화하면서 전력망 구축을 위한 재원 마련 부담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전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11일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에서 전력망 연결을 신청해 대기 중인 발전·저장 프로젝트는 2060GW를 넘어섰다.발전·저장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실제 상업운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철회되는 가운데 전력망 접속 신청부터 상업운전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2000~2007년 건설 프로젝트는 이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25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프로젝트는 중앙값 기준 5년을 넘어섰다.특히 AI 데이터센터가 몰려드는 지역에서는 대규모 전력수요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 7월 공개한 2026년 국가 송전망 수요 연구 초안에서 데이터센터와 국내 제조업 확대, 대형 산업부하 등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를 언급하며 추가적인 송전 인프라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DOE는 신규 발전뿐 아니라 신규 대규모 부하의 전력망 연결과 송전 혼잡 해소를 위해서도 송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미국 전력 인프라의 문제는 단순히 발전량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망을 새로 구축하는데 필요한 송전선과 변압기 등 핵심 장비의 공급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대형 전력 변압기를 조달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최대 4년에 이르며 송전 케이블 조달에도 2~3년이 필요하다. 직류 송전에 사용되는 일부 특수 케이블은 대기 기간이 5년을 넘기도 한다. -
- ▲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구축하는 팹 조감도ⓒSK하이닉스
결국 반도체 공장을 포함한 첨단 제조시설의 투자 결정과 전력 인프라 구축 사이에 시간 차가 발생하는 구조다. IEA는 2026년 전력망 보고서에서 신규 전력망 인프라의 계획·인허가·건설에 5~15년이 걸릴 수 있는 반면 데이터센터는 1~3년이면 건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AI·첨단 제조 수요에 비해 전력망 확충 속도가 느려지면서 산업 투자 확대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2일 CNBC 인터뷰에서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 부담을 줄이고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지 않으면 관세를 내게 하는 방식의 ‘표적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과의 투자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확인했다.특히 미국이 대미 투자 규모에 따라 관세 혜택을 차등 적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가 투자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서 파운드리 팹 등을 건설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차세대 HBM 생산을 위한 첨단 패키징 시설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인디애나 공장 기공식을 열었으며 2029년 하반기 차세대 HBM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 ▲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SK하이닉스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기지를 확대하려면 공장 자체뿐 아니라 전력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본을 투입해 팹을 건설하더라도 필요한 시점에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대신 자체 발전설비를 구축하거나 기존 전력망과 연계한 ‘브리지 전력’을 확보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국내 상황 역시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오는 2050년대까지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수도권 전력수요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부는 초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산단 내 발전소를 건설하고 이후 장거리 송전선로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전력망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전은 지난해 확정한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해 2038년까지 총 72조8000억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용인에 10GW 이상의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산단 내 변전소를 신설하고 기존 전력망을 연계·보강하는 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문제는 이 같은 투자를 담당해야 할 한전의 재무 상황이다. 한전의 총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210조7000억원에 달하며 하루 이자 비용만 115억원 수준이다. 사채 발행 한도 특례가 내년 말 종료될 경우 2028년부터 자금 조달 여력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결국 한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향후 5년 치 전기요금에 해당하는 총 25조원의 선납을 제안했다. 지난해 양사가 납부한 전기요금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에는 20조원, SK하이닉스에는 5조원 규모를 각각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이렇게 확보한 선수금을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망 건설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그러나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대규모 전력 수요가 발생하는 곳마다 전력망 확보와 비용 부담이라는 과제가 따라붙는 구조가 달갑지만은 않다. 미국에서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확대로 전력망 접속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국내에서는 용인 클러스터의 대규모 전력 공급을 위해 송·변전 인프라 투자 자체가 거대한 재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경쟁력은 이제 팹을 짓고 장비와 인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AI 시대에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만큼 미국의 전력망 병목과 국내 송전망 투자 재원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