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긴축 기조 확산 속 빅테크, 고금리에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 우려 미 10년물 국채 금리 5% 육박 … 가계·기업 이자 부담에 투자·소비 위축중동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 지속 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도 높아져 3%대 성장 전망도 반도체 호황에 대부분 의존 … 대외 충격시 확장재정 부담
  • ▲ 수출입 화물이 쌓여 있는 부산항 신선대부두 전경. ⓒ연합뉴스
    ▲ 수출입 화물이 쌓여 있는 부산항 신선대부두 전경. ⓒ연합뉴스
    내년도 총지출 820조9000억원, 미래대응기금 162조원, 올해 경제 성장률 3.3%. 

    이는 반도체 랠리에 기댄 확장재정과 성장률 전망치다. 정부가 반도체 초호황이 벌어들이는 세수를 바탕으로 역대급 확장재정에 나서고 있지만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가 재정 지속 가능성에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주요국이 통화 긴축 사이클에 돌입한 가운데 미국 국채금리까지 급등하면서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빅테크 투자 위축은 반도체 수요 둔화와 한국의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반도체 호황을 전제로 한 올해 성장률 전망에도 하방 위험이 될 수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물가 상승 압력 탓에 글로벌 통화 긴축 사이클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예측 시스템인 페드워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 공개시장위원회 회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할 확률을 85.3%로 관측했다. 일본은행도 이번 주 금리인상이 유력하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동결했기 때문에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0일 3대 정책 금리를 0.25%p씩 인상했다. 한국은행 역시 두 달 연속 인상해 기준금리를 3.00%로 0.25%p 올린데 이어 이르면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급등도 성장 전망에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요 원유 송유관 가동을 중단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국제유가를 자극하고 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지난주 약 9% 오른데 이어 108달러에 육박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103달러 부근까지 올랐다. 

    이 같은 대외 리스크가 심화하면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 3.3%도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한은은 반도체 수출 물량이 전년 대비 10% 후반 증가하고 브렌트유가 배럴당 84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3.3% 성장을 예상해서다. 

    하지만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10% 중반으로 둔화하고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한은이 제시한 성장경로에서 벗어나 3%대 성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인 2.9% 역시 대외 충격 강도에 따라 2.2% 이하로 낮아질 수 있다. 

    더욱이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면 물가와 성장 모두에 악영향을 미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키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동시에 기업의 생산비와 가계의 실질 부담을 키워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도 부담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CPI 발표 직후 4.99%까지 치솟아 약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5%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경계감이 큰 상황이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국내 시장금리에도 상승 압력을 줘 기업과 가계의 자금조달 비용이 함께 높인다. 회사채와 대출금리가 상승하면 기업은 설비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늘어난 이자 부담으로 소비를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고금리가 자금 조달의 부담을 키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투자 확대의 핵심 축인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할 경우 반도체 수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한국 경제 성장세를 약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AI 투자와 개발 속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AI 기술과 관련한 안전 우려 해소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기업공개(IPO)에 나서지 않갰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와 일론 머스크 xAI 공동창립자도 AI 개발 속도 조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AI의 실존적 위험에 대한 경계감이 업계 최상위 경영진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투자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등 AI 관련주 중심으로 매물이 출회되면서 코스피·코스닥이 동반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한국 경제 성장세가 글로벌 반도체경기 호황에 주로 기인한다고 평가했다. KDI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그 영향은 올해 중 주로 수출과 설비투자의 호조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 같은 반도체 호황이 재정 확대를 뒷받침하는 세입 여건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대외 충격으로 반도체 업황마저 둔화할 경우 수출과 기업 실적이 동시에 약화되면서 세수 감소와 경기 둔화가 맞물려 확장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향후 재정 정책 운용 방향에 대해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한 적극적 재정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성장을 뒷받침 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면 세입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여력 관리가 과제로 꼽힌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지금과 같은 양호한 재정전망은 현재 진행 중인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관련 수익 사이클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크게 좌우된다"며 "정부의 세입 전망 역시 기업 수익성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세입 증가분이 일부 산업(반도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기업 실적 증가세가 둔화될 경우 재정성과 호전이 한시적인 데 그칠 위험을 보여준다"며 "현재의 반도체발 세수 급증이 사라지고 세입 증가세가 정상화되면, 재정적자는 다시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