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 6월 150원 인하 뒤 휘발유 소비 886만배럴로 급증국제유가 22~24% 뛸 때 국내 휘발유값은 오히려 6.1% 하락정유사 손실 5兆대·유류세 인하까지 … 정부 '이중 청구서'
  • ▲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뉴시스
    ▲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뉴시스
    중동 지역 불안이 심화하면서 국제 유가가 지난 3월 말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월 말 중동전쟁 발발 이후 정부가 도입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 반년을 넘어서며 정부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정유사 손실액 산정 갈등으로 1차 정산조차 못 이뤄지는 가운데 지난 7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역대 7월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소지바 가격 신호가 왜곡되면서 절약 유인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며 지난 3월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동전쟁 여파로 도입된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 반년을 넘어서면서, 정부 재정 부담은 커지고 정유업계 누적손실도 5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사이 지난 7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역대 7월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급등에도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서 소비자 가격 신호가 왜곡돼 소비 조절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평균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882.41원으로 전년 동기(1667.58원)보다 12.9%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같은 달 휘발유 소비량은 886만 배럴까지 늘면서 역대 7월 기준 최대치를 새로 썼다. 종전 7월 최대치는 2025년 7월의 885만6000배럴이었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국내 휘발유 소비는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해 국내 기름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가격 부담에 운행을 줄이는 등 수요를 조절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위적 가격 통제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수요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7월 한 달간 브렌트유와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각각 24%, 22% 상승했다. 반면 국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6월 ℓ당 2004.67원에서 7월 1882.41원으로 6.1% 하락했다. 정부가 6월 27일 0시부터 적용된 7차 석유 최고가격을 유종별로 ℓ당 150원 낮춘데 따른 것이다. 

    실제 휘발유 소비량은 정부의 가격 통제 강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3월 27일 정부가 2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ℓ당 210원 인상하자 휘발유 소비량은 3월 799만6000배럴에서 4월 689만1000배럴로 꺾였다. 

    이후 최고가격을 동결해오다 지난 6월 27일 ℓ당 150원씩 인하한 뒤 8차와 9차에서도 동결 기조를 이어갔다. 이에 휘발유 소비는 5월 775만6000배럴, 6월 781만8000배럴, 7월 886만배럴로 급증하는 흐름을 보였다. 

    문제는 아시아 지역 석유제품 거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과 국내 석유제품 최고가격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정유업계 누적 손실이 이미 5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손실 보상 범위와 원가 산정 기준을 둘러싼 정부와 정유업계 간 이견이 이어지면서 1차 정산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내수물량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석유제품 수출도 통제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 등 한국산 정제유 수입 비중이 높은 아시아·태평양 주요국이 한국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처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홍 산업연구원부 부연구위원은 "현행 최고가격제는 유가 급등 초기 패닉 국면에서 기대인플레이션 확산을 막기 위한 단기 조치로서 일정한 합리성이 있었다"면서도 "제도를 지속할수록 재정 비용과 수혜의 역진성, 가격 신호 왜곡, 종료시 반등이라는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할수록 정부 재정 부담도 커질수 밖에 없다.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발생하는 손실은 우선 정유사가 부담하고 정부가 원가와 적정 마진 등을 기준으로 인정한 금액을 사후 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가격을 낮게 묶어두면서 정유업계 손실과 재정 부담이 동시에 누적되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 3월 휘발유 유류세 인하율을 7%에서 15%로 확대했다. 인하 전 탄력세율과 비교하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ℓ당 122원 낮아졌다. 당초 7월 말 종료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가격 상승 억제를 위해 인하 조치를 두 달 더 연장했다. 

    유류세 인하는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대신 정부의 세수 감소로 이어진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에 따른 사후 손실 보전까지 더해지면서  고유가 억제를 위해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다. 

    국제유가 상승분을 국내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대신 정부 재정이 그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이어지는 만큼 정부도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으나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최고가격제를 '한시적 조치'라고 밝혔지만 국제 유가 상승에 정부는 제도 연장 및 최고가격 인상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 7월 '2026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의 단계적 폐지를 권고한 상태다. OECD는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는 재정적 비용을 수반하고 인센티브 왜곡, 고소득 가구 혜택 등의 문제가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며 "에너지 위기 지속 시 취약계층 가구, 생존가능한 기업에 대한 지원이 우선"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도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이 장기화할수록 재정 부담과 정유업계 손실, 소비 왜곡이 함께 커지는 만큼, 일률적인 가격 통제에서 벗어나 취약계층 중심의 선별 지원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단계적 정상화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