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수출 금지' 카드에 글로벌 연료 공급망 불안韓, 수출 쿼터에 발 묶여, 기회비용 허공으로빗장 풀면 내수 이탈·세금 부담, 딜레마 빠진 정부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내 유가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산 경유 수출 금지 조치를 검토하면서 글로벌 연료 공급망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경유 순 수출국인 한국은 반사이익이 기대되지만, 정부의 수출 물량 제한 조치에 묶여 사실상 단가 상승효과를 누리는 데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경유 수출 금지가 자동차 휘발윳값을 조금 올릴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경유 가격은 가을 수확 철을 앞둔 지난 22일 갤런당 6.5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업과 화물 운송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커진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행보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해외 공급 확대도 전방위로 압박 중이다. 백악관이 25일 공개한 미중 정상회담 팩트시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세계 공급 안정을 위한 정제유 증산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공급 불안에 대응하고자 유럽연합(EU) 주요국에 비축 경유 방출을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중동과 러시아발 공급 차질에 이어 세계 최대 수출국인 미국마저 빗장을 걸면 국제 경유 가격의 상승 압력이 커질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수출 금지 초기에는 미국 내 경유 가격이 갤런당 약 25센트 하락하겠지만, 조치 장기화로 저장시설이 포화될 경우 원유 처리량 감축으로 이어져 휘발유 가격이 매주 30센트씩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 텍사스주 록하트에서 트럭에 기름을 넣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 텍사스주 록하트에서 트럭에 기름을 넣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경유 순 수출 구조를 갖춘 한국 정유업계는 통상 이런 국면에서 반사이익을 보지만 물량 확대 수혜는 제한적이다.

    30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해 1~8월 한국의 경유 수출 금액은 177억 821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전체 규모에 이미 육박했다. 반면 실제 수출 물량은 1억 2982만 배럴로 전년 동기(1억 3433만 배럴) 대비 오히려 줄었다. 수출액 증가는 물량 확대가 아닌 국제 가격 상승에 따른 착시인 셈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월별 주요 석유제품 수출량 전년 동기 이하 제한' 조치 탓이다. 정부는 국내 물가 안정과 수급 관리를 위해 휘발유·경유 등 주요 석유제품의 월별 수출 물량을 전년 동월 대비 100% 이하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유 매출의 35% 안팎을 경유에 기대는 GS칼텍스, SK에너지 등 주요 정유사는 역대급 정제마진 속에서도 물량을 늘리지 못해 기회 손실을 떠안고 있다. 특히 정부의 손실 보전액이 원가 기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라 정유사의 기회비용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고, 정부가 명시한 적정 수준의 마진을 둘러싼 쟁점도 남아 있어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도 당장 수출 제한을 풀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최고가격은 경유가 리터당 1773원으로 휘발유(1784원)보다 낮지만, 28일 기준 국제 가격은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역전돼 있다. 빗장을 풀면 고수익을 노린 국내 물량이 해외로 일거에 유출될 수 있고, 내수 공급 유지를 위한 정부의 손실 보전 부담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수출 금지가 가시화될 경우 내수 물가 방어와 무역수지 개선 사이에서 산업부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