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회사채 3100억원·88.8% 급감 … 운영·시설자금 발행은 ‘0원’회사채 막히자 은행 기업대출 9.7조↑, 직접금융 빈자리 은행이 흡수美 장기금리 급등에 은행채 4%대 중반 … 기업대출 조달비용도 상승 압력은행채 발행 1년 새 두 배, 중견·중소기업부터 자금조달 문턱 높아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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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채발 고금리 충격에 회사채 시장이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8월 일반회사채 발행은 3100억원에 그쳤고 운영·시설자금용 발행은 한 건도 없었다. 회사채에서 밀려난 자금 수요가 은행으로 몰리고 있지만 은행 조달비용마저 뛰면서 기업이 어느 쪽에서도 싼 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기업의 주식·회사채 공모 발행액은 16조 3311억원으로 전월보다 10조 109억원(38.0%) 줄었다. 회사채 발행은 15조 8762억원으로 36.1% 감소했다. 휴가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겹쳤지만 일반기업의 회사채 시장은 감소 폭과 자금 용도 모두에서 위축이 더 뚜렷했다.

    ◆ 3100억원 전부 '빚 갚기' … 투자·운영자금 발행 0원

    금융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제외한 일반회사채 발행액은 3100억원으로 7월 2조 7770억원에서 88.8% 급감했다. 발행 건수도 23건에서 5건으로 줄었다. 그나마 조달한 3100억원도 모두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한 차환자금이었다. 기업이 영업에 쓰는 운영자금이나 설비투자에 투입하는 시설자금 목적의 발행은 없었다.

    발행시장의 질도 달라졌다. 7월 일반회사채 발행액의 86.3%를 차지했던 AA등급 이상 물량은 8월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A등급이 71.4%, BBB등급 이하가 28.6%를 차지했고 장기채 발행도 전무했다. 기업들이 장기간 자금을 묶어 신규 사업에 투입하기보다 짧게 조달해 기존 빚부터 막는 쪽으로 움직인 흔적이 수치에 나타난 셈이다.

    갚는 돈은 새로 빌린 돈보다 많았다. 일반회사채는 8월 9360억원 순상환돼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순상환을 기록했다. 기업의 단기 조달창구도 넉넉하지 않았다.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발행액은 149조 692억원으로 한 달 새 26조1050억원(14.9%) 줄었다. CP가 16.5%, 단기사채가 14.2% 각각 감소했다. 직접금융시장에서 장·단기 자금조달이 동시에 위축된 것이다.

    빈자리는 은행이 채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예금은행 기업대출은 한 달 새 9조 7000억원 증가해 잔액이 1430조 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대기업대출이 4조 9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이 4조 8000억원 늘었다. 특히 대기업은 회사채 상환을 위한 자금 수요까지 은행으로 이동하면서 증가폭이 전월 3조 8000억원에서 확대됐다. 같은 달 회사채는 9000억원 순상환됐다.

    회사채에서 은행으로 옮겨가는 것만으로 기업의 자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은행 역시 시장에서 돈을 구해 기업에 빌려주는 만큼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어렵다. 직접금융시장의 금리 충격을 피하려 은행으로 이동한 기업이 다시 대출금리 상승을 마주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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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30년물 5.6% 돌파 … 은행으로 옮겨도 '비싼 돈'

    대외 여건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장중 5.6%를 넘어 2002년 6월 이후 24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0년물도 5.255%까지 올랐다. 중동발 고유가에 따른 물가 불안에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부담까지 겹치면서 단기 정책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강하게 압박받고 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이 반영한 10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장중 72%를 넘어섰다.

    조앤 비앙코 본드블록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선임 투자전략가는 CNBC에 "투자자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매우 집중하고 있으며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규모에 대해서도 더욱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준의 기준금리뿐 아니라 장기채를 보유하는 데 요구하는 기간 프리미엄 자체가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발 장기금리 상승은 국내 은행의 조달 여건과도 맞물린다. 5년 만기 AAA 은행채 금리는 지난 28일 연 4.64%로 한 달 전 4.35%보다 0.29%포인트 올랐다. 4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도 68조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8.5% 늘었다. 내년에는 은행채와 여전채를 합쳐 302조원의 만기가 예정돼 있다. 기존 채권을 갚기 위한 차환 발행이 늘어나면 높은 시장금리를 새 조달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은행들도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채권 발행을 앞당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개 시중은행이 하반기 들어 지난 18일까지 발행한 은행채는 24조 6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7.6% 급증했다. 올해 누적 발행액은 54조 55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47조원을 넘어섰다. 기업대출 수요를 받아내기 위해 은행이 자금을 더 확보해야 하지만 채권 공급 확대 자체가 다시 조달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별 격차도 커질 수 있다. 우량 대기업은 회사채와 은행대출을 오가며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고를 수 있지만 신용도가 낮은 중견·중소기업은 선택지가 좁다. 은행이 높아진 조달비용과 건전성 부담을 함께 관리하기 시작하면 금리뿐 아니라 한도와 심사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어서다. 회사채 시장 위축이 장기화할수록 기업 금융의 문제가 '어디서 돈을 빌릴 것인가'를 넘어 '누가 돈을 빌릴 수 있는가'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회사채에서 은행대출로 자금 수요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금융채 발행까지 늘면 기업의 조달 여건은 더 팍팍해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은행채와 여전채가 투자 수요를 흡수해 일반기업 회사채 발행을 압박하고, 은행의 조달비용 상승은 다시 기업대출 금리로 이어진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일수록 회사채와 은행대출 양쪽에서 자금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구조다.

    채영서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금융사들이 늘어난 조달 비용을 대부분 대출 금리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회사채 발행 여건이 악화해 기업의 은행대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출금리까지 상승하면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