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엔 "추후 검토" 보고 … 트럼프는 투자 확정된 듯 전격 공표팩트시트엔 '조건부' 명시 … 미 중간선거용 성과 부풀리기 지적사전 조율 실패냐 설명 불성실이냐 … 정부 협상 책임론 도마
  • ▲ 한국의 대미투자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 한국의 대미투자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사업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하면서 정부의 협상·대국회 설명 책임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 정부가 불과 일주일 전 국회에 알래스카 LNG 사업을 '추후 협의' 과제로 보고하며 투자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사실상 확정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는 최대 20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며 6GW 규모 발전시설과 대형 원전 8기,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언급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알래스카 LNG에 5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 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로이터·블룸버그 등은 알래스카 LNG에 한국이 약 540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사업을 확정 투자사업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국회에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으로 223억 달러 규모의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확정했다고 보고하면서 원전 8기와 알래스카 LNG는 추가 협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특히 알래스카 LNG는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추가로 검토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었다.

    산업통상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앞둔 지난달 30일 외신의 알래스카 LNG 투자 보도에 대해 "프로젝트 참여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발표 직후 공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정부의 설명대로 '조건부 검토' 단계임이 드러난다. 팩트시트에는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투자액이나 수치가 명시되지 않은 채 '상업적 합리성과 적용 가능한 모든 국내법상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작업을 착수한다'는 원칙적 문구만 담겼다. 이미 사업 규모와 스케줄이 구체화되어 '1호 확정 사업'으로 담긴 텍사스 발전소 프로젝트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미 상무장관이 미정 상태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한국의 확정 투자 성과처럼 포장한 배경에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해외 투자와 일자리 창출 실적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특히 알래스카 지역 표심을 겨냥해 미확정 구상과 수치를 선제적으로 발표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실제 투자 확약을 의미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한국 정부가 국회에 설명한 협상 단계와 미국 측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내용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발생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국 측의 발표 내용을 사전에 어느 정도까지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성격이 짙은 발표 내용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면 대미투자 협상 과정과 발표 조율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사전에 알고도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은 내용이 미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됐다면 이를 막거나 발표 전에 정정하지 못한 협상 대응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실제로 알래스카 LNG 투자에 사실상 동의하면서도 국회에는 '추후 협의'라고 설명한 것이라면 대국회 설명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언제, 어떤 수준까지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알래스카 LNG 사업의 경제성도 여전히 변수다. 이 사업은 알래스카 북부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약 1300㎞의 가스관으로 남부까지 운송한 뒤 액화해 아시아로 수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사업 지연 등으로 상업적 타당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정부가 대미 전략투자의 원칙으로 내세운 것도 '상업적 합리성'이다.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 달러, 총액은 2000억 달러로 제한하고 사업별 경제성을 따져 투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알래스카 LNG에 투자할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 미국 측의 정치적 부풀리기 발표에 대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상업적 검토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가 국회에 설명한 협상 단계와 미국 대통령이 공개한 투자 계획 사이의 왜곡과 차이에 대해 얼마나 명확하게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