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부 제공) 2026.05.10. ⓒ뉴시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조선 협력 확대와 대미 전략 투자 방안을 논의하며 통상 외교 행보를 마쳤다. 양국은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를 통해 협력의 틀을 공고히 했으나 기대를 모았던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윤곽이나 관세 우대 확약 등 실질적인 합의점 도출은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11일 산업부와 통상 업계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6~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 핵심 인사들과 연쇄 면담을 가졌다. 이번 방문의 주요 성과로는 '한-미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 양해각서(MOU) 체결과 현지 '한-미 조선협력센터' 설립 추진이 꼽힌다.
총 사업비 66억원 규모의 이 센터는 오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며 우리 조선업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 개선, 인력 양성,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 산업부는 센터 설립을 통해 양국 기업 간 구체적인 협력 사업이 발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 안팎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는 이번 방미에서 구체화 단계로 발전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루이지애나 LNG 수출터미널 사업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며 관련 논의의 진전이나 방향성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현재로서는 어떠한 세부 내용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시행되는 6월 18일 이후에야 논의가 가능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해당 법 시행에 맞춰 미국 전략 산업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 체계를 정립하고 대미 투자의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나갈 계획이다.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기 전 미국의 통상 압박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현재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등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진행하며 전략 제조업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우리 정부는 대미 투자 카드를 활용해 관세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있으나 이번 면담에서 명확한 관세 우대 약속을 받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301조 조사와 관련해 "상호관세 15% 복원 범위 내에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언급하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관세 리스크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에선 이번 방미가 이미 합의된 분야의 '협력 프레임'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앞서 한미는 지난해 11월 14일 체결된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에 따라 한국이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이행하고,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체 투자액 가운데 첨단산업 분야 등에 2000억달러를 투자하고, 미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에 1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번 방미 성과로 내세운 조선협력센터 설립은 새로운 외교 성과라기보다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미국이 조선업 재건과 공급망 재편, 군함 건조 역량 확보 등을 국가 전략 과제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조선 협력 요구에 적극 호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관세·통상 분야 실익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대한 거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기밀 누설' 논란, 쿠팡 제재 등으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어 향후 관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무역법 301조 등 우회 경로를 통해 통상 압박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6월 특별법 시행 전까지 우리 정부가 얼마나 정교한 투자 전략과 협상안을 마련하느냐가 향후 관세 향방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의 조선 협력 요구에는 발 빠르게 응하면서도 정작 우리 기업의 생존이 걸린 관세 확약은 끌어내지 못했다"며 "구체적인 투자 계획 없이 장밋빛 협력 프레임만 유지하다가는 실익 없는 '퍼주기식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