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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환율은 숫자이지만 경제의 체온을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신호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560원을 넘어섰고, 시장은 이미 1600원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 고환율이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호황과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화는 힘을 잃고, 외국인 자금은 빠져나가고 있다. 원화를 떠받치던 기존 공식이 흔들리면서 환율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본지는 '환율 1600원의 그림자' 3부작을 통해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과 시장의 변화, 그리고 고환율이 한국 경제에 남길 파장을 짚어본다.
올해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90.98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반면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수준의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위기의 숫자와 호황의 숫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낯선 풍경이다. 수출이 늘면 원화가 강해진다는 오랜 공식이 흔들리면서 외환시장의 작동 원리도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역대급 흑자, 역대급 환율의 역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5일까지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77.06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평균 환율(1420.97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2분기 평균 환율 역시 1490.98원으로 외환위기 충격이 본격화됐던 1998년 1분기(1596.88원) 이후 가장 높다.
최근 환율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야간거래에서 장중 1561.5원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1555.2원에 개장하며 17년 3개월 만의 최고 수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환율만 놓고 위기를 말하기엔 한국 경제의 다른 지표들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면서 수출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상수지도 역대급 흑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과거 같으면 원화 강세가 나타나야 할 환경이다. 실제 2000년대 이후 외환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공식은 '경상수지 흑자=원화 강세'였다.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 시장에서 원화로 환전하면서 원화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강세가 함께 가던 익숙한 풍경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외환시장의 무게추가 무역에서 자본 이동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 한국을 떠나는 D램 달러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더 이상 원화 강세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해외 투자와 해외 자산 매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거점 구축에 수백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해외 자산 비중 확대를 지속하고 있으며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보관액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이를 'D램 달러(DRAM Dollar)' 현상으로 설명한다. 과거 중동 산유국이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페트로달러'처럼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 역시 미국 자산시장으로 재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한국은 달러를 벌고 있지만 원화를 사는 주체는 줄어들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강세로 이어지던 기존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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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의 무게추, 무역에서 자본으로
환율을 결정하는 축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수출과 수입, 경상수지가 환율을 움직였다면 이제는 자본 이동과 글로벌 투자 흐름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3.48% 하락했다. 주요국 가운데 러시아 루블화 다음으로 낙폭이 컸다. 같은 기간 엔화(-0.65%), 위안화(-0.38%), 대만달러(-0.55%)보다 훨씬 큰 하락폭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을 118조원 이상 순매도했다. 최근 20거래일 연속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달러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증시 역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반도체 호황과 주가 상승이 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스피가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했음에도 외국인들은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며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주가 상승과 원화 강세가 함께 가던 공식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미국 고용지표 호조까지 겹쳤다. 미국의 5월 비농업 신규고용은 17만 2000명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8만 8000명)를 크게 웃돌았다. 달러인덱스는 다시 100선을 돌파했고 미 국채금리도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재부각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달러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은 무역수지보다 글로벌 자금 흐름과 외국인 수급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며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원화가 강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환율 결정 구조 자체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원화 약세를 단순한 달러 강세나 지정학적 리스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수출과 경상수지가 환율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자금 이동과 투자 흐름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최근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글로벌 자본 이동이 확대되면서 경상수지와 환율의 관계가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늘면 원화가 강해지고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 하락으로 이어지던 기존 메커니즘이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최근의 고환율은 일시적인 시장 불안보다 한국 경제 구조 변화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이 1560원보다 그 이후의 환율을 더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