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을 한 달 만에 다시 낮췄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출과 생산이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와 원유 수급 차질이 경기 하방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판단이다.
KDI는 8일 발표한 '경제동향 6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중동 전쟁에 따른 경기 하방 위험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호황을 중심으로 완만한 개선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경제동향에서 경기 판단을 기존 '경기 하방 위험 확대'에서 '경기 회복세'로 상향 조정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표현 수위를 낮춘 것이다. KDI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 연속 '완만한 개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KDI가 경기 판단을 조정한 배경에는 중동 전쟁에 따른 물가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과 원유 수송 차질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가 동시에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2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석유류 가격이 24.2% 급등하면서 상품 물가가 3.5% 상승했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도 2.2%에서 2.5%로 확대됐다.
기업의 생산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생산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5% 올라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중동 전쟁의 부정적 영향은 실물경제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원유 공급 차질로 석유정제 생산은 20.5% 감소했고, 석유제품의 일평균 수출 물량도 20.1% 줄었다.
다만 수출과 생산 지표는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했으며, 일평균 수출도 60.7% 늘었다. 반도체 수출은 182.5%, 컴퓨터 수출은 309.8% 급증하며 전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4월 전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2.4% 증가하며 두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건설업 생산은 5.5% 감소하며 부진이 지속됐지만, 반도체 관련 투자를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8.1% 증가했다.
내수도 완만한 개선 흐름을 보였다. 4월 소매판매는 1.6% 증가했고, 3개월 이동평균 기준으로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는 5월 99.2에서 106.1로 큰 폭 반등하며 기준선인 100을 다시 웃돌았다. KDI는 정부의 고유가 피해 지원 정책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고용시장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3월 20만6000명에서 4월 7만4000명으로 축소됐다. 특히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폭이 33만2000명에서 21만4000명으로 줄었고, 20대 고용률도 1.8%포인트 하락해 청년층 고용 여건 악화가 이어졌다.
금융시장에서도 중동 전쟁 여파가 나타났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4월 말 3.60%에서 5월 말 3.73%로 상승했고, 원·달러 환율도 같은 기간 1483.3원에서 1507.9원으로 올랐다.
KDI는 "고유가 지속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확대되고 생산비용도 높아졌다"며 "원유 공급 차질에 따른 석유정제 생산 감소와 석유제품 수출 위축 등 중동 전쟁의 부정적 영향이 일부 가시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출과 생산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양호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동 전쟁에 따른 원유 수송 차질이 지속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