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원을 넘어선 환율은 외환당국의 긴급 구두개입 이후 결국 1535원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시장은 안도보다 경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달러 수급 불균형이 여전한 만큼 이번 하락이 추세 반전인지, 일시적 진정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1원 오른 1555.2원에 출발했다. 개장가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약 17년 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장 초반 1555원선을 넘어서며 금융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했지만 오후 들어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하며 전 거래일보다 4.1원 내린 15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오전 11시 45분 외환당국의 공동 경고 이후였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등 일부 투기적 외환거래가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며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 쏠림을 결코 용인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메시지가 나온 직후 환율은 장중 1537원까지 떨어졌고 결국 하락 전환에 성공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당국이 최근 급격한 환율 상승에 대해 사실상 공개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해석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환율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환율이 높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중동 정세 불안과 국내 증시 급등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급등을 단순 투기 수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20조원 가까운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내 주식 매도 대금이 달러로 환전돼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 공급도 예전 같지 않다. 4월 경상수지는 282억 9000만달러 흑자로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지만 기업들이 달러를 쌓아두면서 시장 유입 물량은 줄고 있다. 수출은 늘고 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오히려 '달러 가뭄'이 나타나는 셈이다.
전날 열린 F4(재정경제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회의에서도 당국은 NDF 시장을 주요 변수로 지목했다. 역외 시장의 쏠림 현상이 국내 환율 변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고 거래 투명성 강화와 역외 거래의 역내 유도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환율 불안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부담도 키우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다시 3%대로 올라섰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자극하면서 물가 압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환율 쏠림 현상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긴축 필요성을 시사했다. 지난 금통위에서는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부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고, 점도표에서도 21개 전망 점 가운데 19개가 현재 기준금리(2.50%)보다 높은 수준에 분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구두개입이 급등 속도를 늦추는 효과는 있었지만 환율 흐름 자체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 흐름과 기업들의 달러 보유 수요가 바뀌지 않는다면 1500원대 환율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사태와 외국인 주식 매도에 따른 수급 우려가 최근 환율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며 "구두개입만으로 흐름을 되돌리기보다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