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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와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급증으로 국내 만성콩팥병 환자가 폭증하면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예방 및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초기 증상이 없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만성콩팥병은 말기 상태로 진행될 경우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초래해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
대한신장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제학술대회 KSN 2026의 일환으로 '만성 콩팥병 관리제-대만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중심으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법제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했다.
◆ 10년 새 환자 2배 폭증 … 생존율은 암보다 낮고, 인당 의료비는 2800만 원 육박
만성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이 손상되어 있거나 기능 감소가 지속되는 질환으로, 심뇌혈관질환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한다.
이날 축사에 나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의원(국민의힘)이 공개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만성콩팥병 환자 수는 2015년 약 17만 명에서 2024년 34만 6,000명을 넘어서며 10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 역시 이미 10만 명을 돌파했다 .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 명당 말기신부전 유병률이 전 세계 3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
질환의 위험성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국가적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 의원은 "말기신부전 환자의 5년 생존율은 62%에 불과해 일반적인 암 환자 생존율(70.9%)보다도 낮다"며 "현재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은 평균 7년 7개월에 달하며, 이식을 기다리다 하루 평균 6.8명이 숨을 거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전 예방 실패에 따른 경제적 파탄도 심각하다. 만성콩팥병이 악화되어 말기콩팥병(ESKD)으로 진행되면 환자 1인당 연간 의료비가 약 2,837만 원에 달한다. 현재 만성콩팥병으로 인한 연간 총진료비는 2조8300억 원을 돌파해 단일 질환 중 3위다. 학회는 향후 10년 내 투석 관련 진료비만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자율참여에 그친 데이터, 분절된 관리 … "현 체계로는 고령화 대응 불가능"
이날 전문가들은 현재의 '분절적이고 자율적인 관리 체계'로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환자 증가세를 감당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
1부 주제 발표를 맡은 김세중 대한신장학회 등록이사(서울의대 신장내과)는 국내 만성콩팥병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재 학회가 운영하는 연간 말기콩팥병 환자 등록 사업(KORDS)은 의료기관의 '자발적 참여'에만 의존하고 있어 데이터 커버리지가 약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 이사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장벽에 가려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과 국민건강보험공단 학회 간의 유기적인 데이터 연동 및 역학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병원은 병원대로 심평원과 학회에 중복적인 적정성 평가 서류를 제출하느라 행정적 피로감만 호소하고 있고 정작 국가적인 안전망에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초기 예방의 핵심인 당뇨병 환자 관리도 낙제점이다. 국내 말기콩팥병 원인의 47%가 당뇨병인데, 당뇨 환자가 콩팥병 조기 진단을 위해 받아야 하는 단백뇨(뇨검사) 선별검사 수검률은 26~51%에 불과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 활동을 가능케 하는 복막투석(재택투석) 비율은 국내 투석 환자의 5.4%에 그쳐, 혈액투석 편중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 '세계 1위' 대만의 대반전 … 성과연동지불(P4P)과 클라우드로 진행률 40% 낮춰
심포지엄에서는 우리나라와 함께 말기콩팥병 발생률·유병률 세계 최상위권인 대만의 성공적인 국가적 관리 모델이 집중 조명됐다 .
대만 타이베이의대병원의 I-Wen Wu(우이원) 내과 부장은 "대만은 지난 2006년부터 만성콩팥병 단계별 관리 프로그램과 성과연동지불(P4P) 정책을 도입했다"며 "의료기관이 단순히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콩팥 기능 저하를 늦추는 등의 '치료 성과'를 달성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
대만은 국가 조기 검진 체계를 통해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무료 검진을 지원하며 여과율(eGFR) 수치에 따라 다학제 케어(신장내과·당뇨 전문의, 전담 간호사, 영양사 등)를 의무적으로 제공한다 . Wu 부장은 "이러한 적극적인 예방 관리 정책을 통해 만성콩팥병의 말기 진행 위험을 40% 감소시키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
특히 대만의 'NHI MediCloud' 시스템은 IT 기술을 방역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에도 선제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 의사가 환자에게 진료를 보거나 약을 처방할 때 콩팥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등이 감지되면 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에 경고 팝업이 뜬다. 이를 통해 중복 검사를 막고 환자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다 .
◆ 올해 '만성콩팥병 관리법' 제정해야 … 조기 발견 시 인당 1억5000만원 절감
대한신장학회는 대만의 선례를 바탕으로,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 중인 '만성콩팥병 관리법안'(남인순 의원 대표발의)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 법안은 ▲국가 만성콩팥병 관리위원회 설치 및 5개년 종합계획 수립 ▲100% 전수 역학 추적이 가능한 국가 환자 등록체계 구축 ▲인공신장실 인증제 법제화를 통한 투석 질 관리 ▲재택투석(복막투석) 및 신장이식 활성화를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
학회 측은 투석 치료 진입을 단 5년만 늦춰도 환자 1인당 약 1억 5,000만 원의 국가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학회는 오는 2033년까지 말기콩팥병 환자 발생 10% 감소, 재택치료(복막투석 및 이식) 비율 33% 확대를 목표로 하는 '신장건강계획(KHP 2033)'을 추진 중이다.
대한신장학회 박형천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만성콩팥병은 암처럼 국가가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 '공공보건의 영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인공신장실 인증제와 가정투석 활성화를 통해 환자 안전망을 구축하고 건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동 좌장을 맡은 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민태원 회장 역시 "만성콩팥병은 전주기적인 국가 단위의 관리제가 필수적"이라며 "대만의 모범 사례를 우리 의료 환경에 맞춤형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언론 역시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