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 창구 ⓒ연합뉴스
고용보험기금 재정 악화가 심화하면서 보험료율 인상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업 경기 둔화와 고용 부진으로 실업급여 지출은 역대급으로 불어나고 있는 반면 보험료 수입 증가세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금의 구조적 적자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와 고용보험기금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지출은 20조9405억원으로 전년보다 14.3% 증가했다. 총지출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고용안정 지원이 집중됐던 2021년 이후 처음이다.
재정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실업급여 계정 지출 급증이다. 지난해 실업급여 계정 지출액은 17조4833억원으로 전체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구조조정, 폐업 증가 등의 영향으로 실업급여 지급액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 육아휴직급여와 출산전후휴가급여 등 모성보호 사업 지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관련 지출은 4조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생 대응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보험 방식으로 운영되는 고용보험기금이 해당 비용까지 부담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입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약 59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말 기준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예수금을 제외한 실질 적립금은 796억원에 머물렀다. 
고용보험법은 대량 실업 등에 대비해 연간 지출액의 1.5~2배 수준을 적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난해 실업급여 적립 배율은 0.1배 수준에 그쳤다. 사실상 차입금에 의존해 기금을 운용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최근 고용시장 상황도 기금 운용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만명 감소하며 17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제조업 취업자가 14만명 줄고 청년 취업자도 25만5000명 감소하는 등 고용시장 전반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취업자 감소는 곧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세 둔화와 보험료 수입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동전쟁 리스크와 반도체 경기 둔화 등이 이어질 경우 실업급여 수요는 더욱 확대될 수 있어 기금 재정에는 이중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안팎에서는 고용보험료율 인상 필요성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고용보험료율은 실업급여 계정 기준 근로자와 사업주가 각각 0.9%씩 부담하는 구조다. 하지만 실업급여 지출이 급증한 반면 보험료 수입 기반은 둔화되면서 현행 보험료율만으로는 기금 재정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고용보험기금은 코로나19 이후 재정 정상화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논의가 번번이 미뤄졌다. 그러나 최근 취업자 감소세가 본격화되고 실업급여 지출이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나면서 더 이상 제도 개편을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보험료율 인상은 근로자와 기업 모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사회적 반발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계는 "고용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경영계 역시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고용 축소 악순환이 올 것"이라며 맞서는 중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 여부와 함께 모성보호급여의 일반회계 전환, 실업급여 제도 개선 등 여러 대안을 놓고 재정 안정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급여는 보험 원리에 따라 운영하되 출산·육아 지원은 국가 재정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전문가들도 현재의 재정 구조로는 기금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취업자는 줄고 실업급여와 육아지원 지출은 늘어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고용보험기금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일반회계 지원 확대나 보험료율 조정 논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