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건설 현장 모습.ⓒ연합뉴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장기화하고 있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조합과 시공사 간 이견은 조정 절차를 거쳐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 분위기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공사비 협상이 계약 해지와 공사비 검증 신청으로 이어지며 착공과 사업 추진 일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16일 건설분쟁조정위원회 분쟁 접수·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조정위에 접수된 공사비·자재비 상승 관련 분쟁금액은 총 2428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분쟁 1건당 평균 신청금액은 39억8000만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조정위 전체 조정신청 133건 가운데 조정이 성립된 사건은 7건으로, 성립률은 5.26%에 그쳤다. 조정이 성립된 사건도 접수부터 성립까지 평균 295일이 걸렸다.

조정 단계에서 종결되지 못한 사건도 적지 않았다. 같은 기간 소 제기로 이어진 사건은 15건, 각하·반려는 29건으로 집계됐다. 조정불성립 사건도 18건이었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발주자와 시공사 간 이견이 조정 절차 안에서 정리되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셈이다.

공사비 상승 압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4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6.88로 잠정 집계됐다. 전월보다 1.75%, 전년 동월보다 4.44% 오른 수치다. 2020년을 100으로 보는 지수가 130대 중반까지 오르면서 자재비·노무비·장비비 부담이 공사비 증액 요구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비사업 현장의 공사비 검증 신청도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이 공사비 검증 업무를 맡은 2019년 연간 검증 건수는 3건이었지만 2025년에는 52건으로 증가했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이견이 제도권 검증 절차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공사비 검증은 정비사업에서 공사비를 일정 비율 이상 증액하려는 경우 사업시행자가 검증기관에 공사비 적정성 검토를 의뢰하는 제도다. 조합원 20% 이상이 요청하거나 공사비 증액률이 기준을 넘으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 조합은 산정 근거를 따져봐야 하고, 조합원들에게 늘어나는 분담금도 설명해야 한다"며 "증액 규모가 크면 사업 일정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검증이나 조정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검증이나 조정이 길어지면 그 기간 동안 금융비용과 사업비가 불어나 결국 조합원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도 공사비 증액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사업에서는 시공사가 3.3㎡당 공사비를 기존 584만원에서 959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증액 요구가 반영될 경우 총 공사비는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늘어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에서도 공사비 증액 요구가 나왔다. 시공사가 제시한 도급공사비는 8947억원으로, 기존 7740억원보다 약 1200억원 많은 규모다. 증액분을 반영하면 3.3㎡당 공사비는 824만5000원에서 998만5000원 수준으로 오른다.

지방 정비사업장에서는 계약 해지와 공사비 검증으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대전 동구 가오동1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공사비 증액 요구와 운영비 대여 중단 등을 이유로 시공사에 공사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공사비 협상이 계약 관계 문제로 번진 사례다.

부산 수영구 광안2구역 재개발 사업은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절차로 넘어갔다. 조합은 시공사의 추가 공사비 증액 요구를 두고 공사비 본검증을 신청했다. 해당 사업장은 2018년 수주 당시 3.3㎡당 445만원이었던 공사비가 설계 변경과 마감재 변경 등을 거치며 750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공사비 분쟁은 증액 여부보다 증액 폭과 산정 근거를 두고 이견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며 "계약 단계부터 물가 변동 기준과 공사비 조정 방식을 명확히 정하지 않으면 검증과 조정 절차에서도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