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로이터
국제 금 가격이 올해 1월 사상최고치를 경신한 뒤 20% 이상 밀렸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하락을 단순한 고금리 부담으로 보기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누적된 과매수 부담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만 미국 부채 확대와 달러 신뢰 약화,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중장기 금 강세론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16일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국제 금 가격(달러/트로이온스)은 올해 1월 사상최고치인 5354달러를 기록한 뒤 20% 하락해 4300달러선까지 내려왔다. 이달 들어서만 5% 이상 빠지며 단기 조정 압력이 커진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2026년 초까지 금과 은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과매수 부담이 누적됐다고 보고 있다. 미·이란 전쟁 이전인 2월부터 이미 조정 흐름이 시작됐고, 현재 가격 하락은 그동안 쌓인 과열을 식히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앞으로 금 가격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는 인플레이션이 꼽힌다. 경기가 좋아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금리 인상이 물가를 진정시키고 금 가격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원자재 가격 상승, 지정학적 충돌, 공급망 병목, 보호무역 강화 등으로 발생하는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금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실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는 미국 기준금리가 3.5%에서 18%까지 급등했지만, 금 가격은 약 26배 오른 바 있다. 금리 상승 자체보다 물가 불안과 통화 신뢰 훼손이 동시에 나타난 환경이 금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면 금값이 떨어진다는 공식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왜 금리를 올리느냐"라며 "경기는 식는데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화폐 가치 방어 수단으로 금의 매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신뢰 약화도 금 강세론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거론된다. 미국 정부 부채가 약 39조 달러에 이르고, 연간 이자 비용만 1조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미 국채 중심의 외환보유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러시아 외환보유고를 동결하고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한 사례도 달러 자산 보유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는 단순한 가격 베팅이 아니라 탈달러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과거 외환보유고의 중심이 달러와 미 국채였다면, 최근에는 금 비중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의 축이 일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금 보유량을 둘러싼 의구심도 시장의 관심사다. 중국의 공식 금 보유량은 약 2000톤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실제 보유량이 최소 5000톤 이상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중국이 자국 내 금 생산분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고 내부 시장에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금을 전략자산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금 가격이 추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고용지표가 견조하고 연준의 긴축 기조가 길어질 경우 달러와 미 국채금리가 다시 강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금 수입 규제와 관세 인상 등도 단기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이런 규제 요인이 장기적으로는 금 가격을 떠받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유통 비용과 수입 비용이 상승하면 단기 수요는 눌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물 금의 조달 원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금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기 금리 변수와 장기 통화 질서 변화 사이에서 엇갈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연준의 금리 정책과 달러 흐름에 따라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 부채 부담, 달러 신뢰 약화,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린 구조적 환경을 감안하면 금 강세론도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 가격을 단순히 금리만 보고 판단하면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며 "달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중앙은행들이 금 비중을 높이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금은 조정 때마다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는 "달러와 금리의 비우호적 환경 속에서도 신흥국 중앙은행 수요가 유지(월평균 +27톤)된다면 금 가격은 연말까지 5290달러로 추가 상승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