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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또 한 번 '검은 화요일'을 맞았다. 코스피가 전일 종가 대비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한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이 11조원 넘게 팔아치운 물량을 개인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받아냈다. 증권가에서는 하락세가 장기화할 경우 고점에서 매수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910.71포인트(9.99%) 급락한 8203.84에 거래를 마쳤다. 전일 종가 대비 역대 최대 하락 폭이다.
하락률 기준으로는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올해 3월 4일 기록한 698.37포인트·12.06% 급락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낙폭이다. 이날 지수는 0.34% 내린 9,083.54로 출발한 뒤 장중 내내 우하향 흐름을 이어가며 낙폭을 키웠다.
시장 충격이 커지자 한국거래소는 오전 11시 40분께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 즉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이에 따라 5분간 프로그램매도호가 효력이 정지됐다. 오후 2시 33분에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되며 20분간 매매거래가 중단됐지만, 하락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수급은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매도세가 주도했다.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한국거래소(KRX)와 넥스트레이드(NXT)를 합쳐 5조792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기관도 5조4854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11조1124억원을 순매수하며 역대 최대 순매수 기록을 새로 썼다.
시가총액 상위주도 일제히 흔들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후 17년여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날 SK하이닉스는 전장보다 12.47% 내린 255만5000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락폭은 2008년 12월 24일(-12.73%) 이후 17년 6개월 만에 가장 컸다.
삼성전자도 12.31% 급락한 31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하락률은 지난 2008년 10월 24일(-13.76%) 이후 17년 8개월 만의 최대 낙폭이다.
이날 국내 증시 폭락은 미국 기술주 약세와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우려가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간밤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하락한 데 이어, AI 인프라 투자 부담 우려가 글로벌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국내 정책 이슈도 투자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치권에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발생한 미실현 이익을 소득으로 간주해 포괄 과세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 점이 증시 하방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치권에서는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발생한 미실현 이익도 소득으로 간주해 포괄 과세해야 한다는 토론회가 개최됐고, 미실현 이익 과세 논의는 투자심리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며 증시 하방 압력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쏠림에 따른 단기 부작용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최근 국내 증시 상승을 주도했던 반도체 대형주에 외국인 차익실현 매물이 집중되면서 지수 변동성이 증폭됐다는 평가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쏠림현상에 대한 단기적인 부작용이 또 발병한 것”이라며 “외국인을 중심으로 차익실현 압력이 더 거세지다 보니 급락과 변동성 증폭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조정을 펀더멘털 악화나 버블 붕괴 신호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연구원은 “속도와 쏠림이라는 기술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펀더멘털 악재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증시 고점, 버블 붕괴의 신호는 아니기에, 매도 동참보다는 관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개인투자자의 대규모 순매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 매도에 나선 가운데 개인이 하락장에서 물량을 대거 받아낸 만큼, 향후 조정이 길어질 경우 손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버블 붕괴 신호로 해석할 경우 투자심리 악화로 하반기부터 이른 대세 하락장이 올 수도 있다”면서 “하락 장기화시 고점에 물린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이 눈덩이로 불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