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항 신항ⓒ부산항만공사
정부가 호남권에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투자를 단행하며 총력 지원에 나섰다. 글로벌 해양 수도를 표방한 부산 지역의 핵심 산업 육성 계획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소외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 인프라 구축이 지자체 차원에 머물며 국가 산업 정책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호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9일 국민 보고회에서 "수도권 단일 거점만으로는 전력, 용수, 부지 등에서 성장 한계가 있다"며 "호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하기 위해 총 800조 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투자와 함께 정부는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10년 이상 소요되던 산단 조성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각각의 메가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기존 행정 절차를 단축하고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반면 해양 수도 부산을 향한 정부의 정책 행보는 대조적이다.
해양수산부의 2026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핵심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항만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증가율은 0.8%에 그쳤다. 해수부는 "타당성 조사, 관계 부처 협의 등 사전 절차 이행 필요성을 고려해 적정 규모만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단에는 규제를 철폐해 패스트트랙을 열어주었지만, 항만 인프라 구축에는 사전 절차 준수를 이유로 예산을 묶어둔 셈이다.
▲ HMM 컨테이너선ⓒHMM
이 같은 인프라 투자 부재는 해양 수도 부산 구축의 지연으로 이어진다. 국내 1위 해운기업 HMM은 최근 부산으로 법인 등기 이전을 마쳤지만 실질적인 업무 공간 조성이나 인프라 지원 없이 사실상 간판만 내려간 상태다.
이는 해외 주요 항만도시 육성을 위한 각국 정부의 지원과 대비된다. 중국은 국영 해운기업인 코스코(COSCO) 본사를 상하이로 이전시키며 각종 세제 인센티브와 함께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 결과 상하이는 글로벌 항만도시로의 도약에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HMM 이전 이후 이를 뒷받침할 생태계 조성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해운업계와 전문가들은 해양수산부와 HMM 이전을 넘어 실질적인 해운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HMM 부산 이전만으로 해양 수도가 완성되지 않는다"며 "해운 금융 조달, 선박 매매, 해사 전문 법원 등 관련 지식서비스가 한데 모인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이를 뒷받침할 정부 차원의 핀셋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쏟아붓는 반도체 산업 지원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산업계에서는 특정 산업에만 쏠린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투트랙 산업 육성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첨단 제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근간인 산업에도 반도체 수준의 정책적 관심과 과감한 인프라 투자, 특별법 제정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