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정상외교를 계기로 해빙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양국 국민 사이에서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 국민 10명 중 7명은 EU형 한일 경제공동체 추진에 찬성했고, 일본 국민도 10명 중 6명이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다만 제3국 관광객의 비자 상호인정, 이른바 ‘한일판 솅겐조약’에 대해서는 불법체류와 치안 우려가 맞물리며 찬반이 엇갈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한국과 일본 국민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 관광협력 및 경제공동체 추진에 관한 의견 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일 양국이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 국민의 69.8%가 찬성했다. 세부적으로는 52.6%가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고, 17.2%는 “적극 찬성하며 조속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일본 국민도 59.8%가 한일 경제공동체 추진에 찬성했다. 특히 최근 5년 안에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일본 국민의 찬성률은 74.5%로, 방문 경험이 없는 응답자 45.4%보다 29.1%포인트 높았다. 실제 왕래 경험이 경제협력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통상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 모델로 거론돼 왔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도 국회 강연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한일 경제협력의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공동체보다 현실적인 협력 과제로 꼽히는 관광 분야에서는 찬성 여론이 더 뚜렷했다. 한일 관광협력 확대에 대해 한국 국민은 76.8%, 일본 국민은 58.0%가 찬성했다. 반대는 한국 16.8%, 일본 21.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한국 6.4%, 일본 20.8%였다.
찬성 이유로는 양국 모두 관광산업과 내수 경기 활성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한국 국민의 71.1%, 일본 국민의 63.1%가 관광협력 확대를 통해 내수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반대 이유에서는 양국의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 국민은 역사·감정적 갈등 심화 우려가 51.2%로 가장 높았고, 양국 관계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45.2%였다. 일본 국민은 치안·안전 문제를 우려한다는 응답이 71.7%로 가장 많았고, 역사·감정적 갈등 심화 우려가 54.7%로 뒤를 이었다.
▲ ⓒ대한상의
출입국 간소화에 대해서도 양국 모두 찬성 의견이 반대보다 많았다. 여권 없이 자국 신분증만으로 한일 간 출입국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 국민의 60.4%, 일본 국민의 44.8%가 찬성했다. 반대는 한국 32.8%, 일본 35.0%였다.
찬성 이유는 여행 절차 간소화가 압도적이었다. 한국 국민의 85.8%, 일본 국민의 88.8%가 여행 절차 편의성 증대를 이유로 들었다. 여권 발급·재발급 비용 절감을 꼽은 응답도 한국 43.7%, 일본 52.7%였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2025년 2월 기준 일본 국민의 여권 보유율은 17.5% 수준이다. 언어 장벽, 엔저, 여권 발급 비용 등이 해외여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출입국 문턱이 낮아질 경우 일본인의 방한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제3국 관광객에 대한 비자 상호인정 제도에는 신중론이 적지 않았다. 한국 또는 일본 비자 중 하나만 발급받은 제3국 국민이 양국을 연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은 찬성 50.0%, 반대 45.2%로 찬성이 근소하게 앞섰다. 일본은 반대 38.6%, 찬성 34.6%로 반대가 소폭 우세했다.
이 제도는 EU 회원국 간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솅겐조약에 빗대 ‘한일판 솅겐조약’으로 불린다. 도입될 경우 일본 비자를 받은 외국인 관광객이 별도 한국 비자 없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 대한상의는 앞서 한일 관광협력 경제효과 분석에서 이 제도 도입 시 최대 184만명의 방한 관광객 추가 유치가 가능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찬성 이유는 양국 모두 내수 활성화 기대가 가장 컸다. 한국 국민의 69.2%, 일본 국민의 63.0%가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른 내수 진작 효과를 꼽았다.
반면 반대 이유는 출입국 관리와 안전 문제에 집중됐다. 한국 국민은 외국인 불법체류·취업자 증가 우려가 66.4%로 가장 높았다. 일본 국민은 국내 치안 불안과 범죄 증가 우려가 74.6%로 가장 많았다. 관광객 유치 효과가 크더라도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체류 관리, 신원 확인, 범죄 대응 시스템에 대한 신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양국 국민은 민감도가 낮고 체감 효과가 큰 실무형 협력에는 높은 기대감을 보였다. 교통카드 상호 호환이 여행 편의성에 도움이 될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 국민의 83.0%, 일본 국민의 64.2%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간편결제 상호 연동에 대해서도 한국 국민 85.6%, 일본 국민 66.0%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출입국·비자 제도처럼 안보와 치안 문제가 얽힌 의제보다 결제·교통 인프라 연동이 한일 관광협력의 우선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실제 양국에서는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을 개찰구에 태그해 이용하는 오픈루프 결제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도쿄메트로 등 주요 철도사업자를 중심으로 올해 3월 오픈루프 결제를 도입했다. 한국도 서울시가 2030년까지 국제 신용카드 비접촉 결제 표준 기반의 오픈루프 교통결제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