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이찬진 금융감독원과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
정부와 금융당국이 충분한 안전장치도 없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하면서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급락장에서는 레버리지 ETF의 기계적인 리밸런싱 매도가 다시 기초자산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현실화했고 글로벌 투자은행과 한국은행도 시장 변동성 확대를 경고했다.
당국이 상품 출시 전 스트레스 테스트와 투자자 보호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 허가를 내준 뒤 뒤늦게 규제 보완에 나선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코스콤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 자금유입이 가장 많은 ETF는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로 3조1000억원어치가 유입됐다. 이어 KODEX 삼성전자단일종목레버리지(1조6000억원), SOL AI반도체TOP2플러스(1조4000억원), TIGER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1조2000억원) 등으로 집계된다. 자금유입 상위권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압도적이다. 
지난 5월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6종은 상장 한 달여 만에 순자산총액이 10조원 가까이 불어나는 등 국내 ETF 시장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상품 도입 과정에서 시장 충격과 쏠림 위험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수 반도체 대형주의 지수 영향력이 절대적인 데다 개인투자자의 특정 상품 쏠림도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종목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상품을 허용한 것은 시장 구조상 위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다.
레버리지 ETF는 매일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장 마감 무렵 포트폴리오를 다시 조정하는 리밸런싱을 실시한다. 기초자산 가격이 급락하면 목표 노출 비중을 맞추기 위해 현물이나 파생상품을 추가로 매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매물이 다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끌어내리고, 추가 하락이 또 다른 리밸런싱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기계적 매도(Mechanical Selling)'라고 부른다. 투자 판단이나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상품 구조에 따라 자동으로 매도 주문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상승장에서는 레버리지 효과로 수익률을 끌어올리지만 하락장에서는 매도 물량을 증폭시키는 가속 페달로 돌변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주 급락 국면에서 이러한 구조적 위험이 그대로 드러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하루 만에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하자 두 종목을 추종하는 14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도 일제히 20% 넘게 급락했다. 상장 이후 모든 상품이 공모가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기초자산을 따라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 기초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ETF 전문매체들은 최근 한국 증시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Tail wagging the dog)' 사례로 소개하며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거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변동을 증폭시켰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IB 바클레이스는 급락장 당시 ETF 리밸런싱 거래가 SK하이닉스 일평균 거래량의 약 17%, 삼성전자의 약 10%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ETF 운용을 위한 기계적인 거래가 국내 시가총액 최상위 종목의 수급을 흔들 수 있는 규모로 커졌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도 '코스피, 주요 기술적 지지선을 시험하다'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급격한 디레버리징이 장중 변동성을 증폭시켰다"고 진단했다. 상품 도입 당시 우려됐던 변동성 확대가 실제 시장에서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사전에 걸러내야 했던 위험을 한국은행이 뒤늦게 공식 경고했다는 점도 논란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일방향 매매와 시장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하락장에서는 ETF 환매와 리밸런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개인투자자의 손실과 시장 변동성이 함께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이 상품 출시 전에 검토했어야 할 위험 요인을 상장 이후 중앙은행이 경고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투자자 요건 강화와 규제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상품 도입 이후 나타난 시장 영향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상품 출시 전 충분한 스트레스 테스트와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일단 허가부터 내준 뒤 문제가 발생하자 뒤늦게 규제에 나서는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반도체주 변동성 확대에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기존 악재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기계적인 매도가 더해지면서 주가 하락 폭이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는 분석이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퍼스케일러의 인공지능(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향 수요 기대감이 반영됐던 한국 기업들 역시 영향을 받았다"며 "여기에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수요가 더해지면서 변동성이 더욱 확대되는 효과를 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허용 자체보다 사전 안전장치가 부족했던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품별 순자산 한도와 기초자산 거래량 대비 리밸런싱 규모, 장 마감 집중 주문을 분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시장이 과도하게 집중된 상황에서 대규모 레버리지 상품을 허용하면 하락장에서 어떤 충격이 발생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금융당국이 상품 다양화와 시장 활성화에만 무게를 두고 변동성 확대와 개인투자자 손실 가능성을 가볍게 본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