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포스코가 불법파견과 원청교섭이라는 ‘이중 덫’에 빠졌다. 대법원이 제조실행시스템(MES)을 통한 업무 지시 등을 근거로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포스코의 직접고용 의무를 재확인한 데 이어 중앙노동위원회도 포스코가 하청노조 3곳과 각각 교섭해야 한다는 판단을 유지하면서다. 
특히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구축한 통합 생산관리체계가 원청의 지휘·명령과 근로조건 지배력을 보여주는 근거로 잇따라 작용하면서 포스코의 생산관리와 협력사 운영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이날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378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건에서 정년을 넘긴 일부 노동자를 제외하고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5차 소송에는 241명, 7-1차 소송에는 137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들이 포스코 협력업체에 고용됐지만 포스코의 지휘·명령을 받아 근무해 실질적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에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크레인과 원료하역, 압연, 롤 가공, 제강 등 업무를 수행한 노동자가 포함됐다. 포스코퓨처엠의 협력업체 소속으로 코크스로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재하청 노동자도 직접고용 대상에 포함됐다. 포스코에서 1차 협력업체가 아닌 ‘하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고용 의무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포스코와 협력업체가 체결한 계약이 적법한 도급인지, 실질적인 근로자파견인지에 있다. 도급은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인력과 작업방식을 결정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계약이다. 반면 파견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작업 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휘·명령하는 구조다. 파견법에 따라 원청이 파견 노동자를 2년 넘게 사용하면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법원은 포스코가 운영하는 MES에 주목했다. MES는 주문과 생산계획을 바탕으로 공정별 작업 대상과 시점, 장소, 생산량, 설비 상태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포스코는 MES를 통해 협력업체에 생산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을 뿐 개별 노동자를 직접 지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MES는 기업의 생산계획과 현장 설비를 연결하는 생산운영관리 구조는 전 세계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생산관리 방식이다. 국제자동화학회의 ISA-95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의 IEC 62264는 기업의 경영·물류 영역과 제조운영·공정제어 영역 사이의 정보교환과 시스템 계층을 규정한 국제표준이다. MES에 해당하는 제조운영관리 영역은 전사적자원관리(ERP)와 실제 공정제어시스템 사이에서 생산과 품질, 설비, 재고 정보를 연결한다.
법원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MES에 입력된 포스코의 생산계획과 작업정보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협력업체가 작업 순서나 방식을 독자적으로 변경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근로자파견의 근거로 판단했다. 포스코가 작성하거나 제공한 작업표준서와 협력업체에 대한 핵심성과지표(KPI) 평가, 포스코 공정과 하청 업무의 연속성 등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항소심은 MES와 작업표준서, KPI 평가를 포스코의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보여주는 근거로 봤으며 대법원은 이 같은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현장관리자가 하청 노동자에게 구두나 서면으로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MES가 작업 대상과 순서, 장소 등을 결정했다면 시스템을 통한 간접적인 지휘·명령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스마트팩토리 전환으로 사람의 작업지시가 전산화·자동화된 상황에서 원청이 시스템에 입력한 정보가 실제 현장 노동자의 업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결정하는지가 불법파견 판단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다만 MES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불법파견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4월 포스코엠텍 소속 냉연제품 포장업무 노동자 7명에 대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포스코엠텍이 자체 설비와 기술, 독립적인 기업조직을 갖추고 작업속도와 인력배치를 스스로 결정한 점을 고려했다. MES가 제품규격과 주문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됐고 포스코가 구체적인 작업방식까지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MES가 생산정보를 협력업체에 제공하는 데 그치고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인원과 작업 순서, 작업방식을 결정한다면 도급의 독립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반대로 포스코가 MES를 통해 작업 대상과 시간, 장소, 순서를 정하고 협력업체가 이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면 불법파견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커진다.
제선과 제강, 압연 등 공정이 24시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제철소에서는 MES를 통한 실시간 생산관리가 필수적이다. 포스코가 하청 공정을 MES에서 분리하거나 생산정보 제공을 대폭 줄일 경우 생산성과 품질, 납기뿐 아니라 설비와 산업안전 관리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업체가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다시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포스코의 부담은 직접고용에 그치지 않는다. 앞선 4월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포스코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하청노조의 교섭단위를 분리했다. 포스코가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노위는 6월17일 초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국플랜트건설노조 등 하청노조 3곳과 각각 별도로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사건은 3월10일 한국노총 금속노련이 포스코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가 각각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불법파견과 단체교섭 사용자성은 적용되는 법과 판단 기준이 다르다.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포스코가 하청 노동자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휘·명령했는지가 핵심이다. 단체교섭 사건에서는 포스코가 임금과 작업환경, 산업안전 등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두 판단 모두 포스코가 하청 공정에 행사하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포스코가 작업 대상과 순서, 방법까지 세밀하게 관리하면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지휘·명령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작업환경이나 산업안전 등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면 하청노조와 단체교섭해야 할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재하청 노동자까지 직접고용 의무가 인정되면서 포스코는 직고용 대상 범위도 다시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직고용되지 않고 협력업체에 남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하청노조별 단체교섭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직접고용 전환과 원청교섭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포스코의 인력·노무·생산관리 조직이 함께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한 셈이다. 
포스코 판결의 영향은 향후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원청과 하청 공정이 MES로 실시간 연결되는 업종도 생산관리시스템이 원청의 지휘·명령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은 반복된 불법파견 판결과 하청노조별 원청교섭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포스코의 생산관리 재편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편 포스코는 이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후속 절차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는 반복된 불법파견 소송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4 생산공정에서 조업 지원업무를 맡는 협력사 현장 직원 7000명을 순차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