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환자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을 때 혈액을 채취하지 않고도 혈중 이산화탄소 수치를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모델이 개발됐다.
혈관이 가늘어 동맥관 삽입이 어려운 신생아와 영아의 반복 채혈 부담을 줄이면서도 기존 비침습적 검사보다 정확하게 호흡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연구진은 AI가 동맥혈가스검사를 완전히 대신하는 기술은 아니며 실제 진료 적용에 앞서 전향적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김현호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은 수술 중 수집되는 생체신호와 임상 정보를 결합해 소아 환자의 동맥혈 이산화탄소 분압(PaCO₂)을 추정하는 머신러닝 모델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마취 분야 국제학술지 《Anesthesiology》에 게재됐다.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박주현 전공의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조채은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동맥혈 이산화탄소 분압은 환자의 폐가 이산화탄소를 적절하게 배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전신마취 중에는 환자가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워 인공호흡기로 환기를 조절하기 때문에, 의료진은 이 수치를 토대로 호흡 상태와 산·염기 불균형 여부를 판단한다.
가장 정확한 방법은 손목이나 사타구니의 동맥에 관을 삽입하거나 동맥혈을 직접 채취해 혈액가스분석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아는 성인보다 혈관이 가늘고 체내 혈액량도 적어 동맥관 삽입과 반복 채혈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현장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환자가 내쉬는 숨의 마지막 부분에서 측정되는 호기말 이산화탄소(EtCO₂)를 활용한다. 별도 채혈 없이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폐의 환기와 혈류가 일치하지 않는 환기·관류 불균형 등의 영향을 받아 실제 동맥혈 수치와 차이가 날 수 있다.
연구진은 호기말 이산화탄소만으로 수치를 판단하는 대신 체온과 환기량, 연령 등 수술 중 확보할 수 있는 여러 정보를 AI에 함께 학습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연구에는 서울대학교병원 수술실 생체신호 공개 데이터베이스인 ‘바이탈DB(VitalDB)’가 활용됐다. 연구진은 소아 환자 3586명에게서 확보한 호기말 이산화탄소와 동맥혈 이산화탄소 분압 측정값 8853쌍을 후향적으로 분석했다.
AI가 예측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중요하게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SHAP 분석을 거쳐 호기말 이산화탄소와 체온, 분당 환기량, 연령, 흡입 산소 분율, 심장질환 유무, 폐 순응도, 수술 전 헤모글로빈, 체질량지수, 평균 동맥압 등 10개 변수가 최종 모델에 반영됐다.
분석 결과 가장 우수한 성능을 보인 경사부스팅 모델의 평균절대오차(MAE)는 2.73㎜Hg였다. 기존처럼 호기말 이산화탄소만으로 추정했을 때의 평균오차 3.56㎜Hg보다 약 23% 낮은 수준이다.
연구진은 모델 개발에 사용하지 않은 다른 병원과 시기의 데이터로도 성능을 점검했다. 충남대학교병원 소아 환자 50명에게서 수집한 92개 측정값을 적용했을 때 평균절대오차는 3.65㎜Hg였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2024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수집한 소아 환자 499명의 측정값 2138개를 이용한 시간적 검증에서도 평균절대오차 3.67㎜Hg를 기록했다. 학습 데이터와 다른 의료기관 및 최근 환자군에서도 일정 수준의 예측력이 유지된 셈이다.
이번 모델이 곧바로 동맥관 삽입이나 혈액가스검사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환자 상태가 급격히 변하거나 정확한 산·염기 상태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존 검사가 여전히 필요하다.
대신 동맥관 삽입이 어렵거나 반복적인 혈액검사가 부담스러운 소아 환자에서 검사 필요성을 판단하는 보조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 수치 변화가 뇌혈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정밀한 환기 관리가 요구되는 소아 신경외과 수술 등이 잠재적인 적용 분야로 꼽힌다.
김현호 교수는 "개발된 모델이 동맥혈가스검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동맥관 삽입이 어렵거나 검사를 자주 시행하기 힘든 상황에서 유용한 보조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아 신경외과 수술처럼 이산화탄소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하는 환자에서 활용 가능성이 기대된다"며 "실제 임상에 적용하려면 전향적 임상시험을 통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