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기준금리 인상과 공사비 상승으로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진 가운데 현금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금융비용과 토지비·공사비는 먼저 투입되는 반면 분양대금과 공사대금 회수에는 시차가 있어 회사채와 전환사채(CB), 공사대금채권 유동화 등으로 조달 수단을 넓히는 모습이다.
21일 건설·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지난 5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7.67(잠정)로 전월보다 0.40%, 전년 동월보다 5.07% 올랐다.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상승했다.
중동발 원가 불안도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브렌트유는 지난 20일 장중 배럴당 91.40달러까지 올랐다. 브렌트유가 장중 9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6월 11일 이후 처음이다. 유가 상승은 건설장비 운용비와 운송비, 석유화학계 건축자재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건설경기 체감도 여전히 낮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74.5로 전월보다 3.0p 올랐지만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
현대건설은 지난 7일 5000억원 규모 무이자 전환사채 발행을 마쳤다. 만기는 2031년 7월이며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 모두 0%다. 조달 자금은 해상풍력과 태양광, 소형모듈원전(SMR), 대형 원전 등 뉴에너지 사업에 올해와 내년 각각 2500억원씩 투입한다.
현대건설은 5년 동안 이자 없이 5000억원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주가가 전환가격을 웃돌아 투자자들이 주식 전환에 나서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만기에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SK에코플랜트는 오는 22일 10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2000억원까지 증액해 오는 30일 발행할 계획이다. 발행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조달 자금은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회사채 상환에 쓰인다.
기존 채무를 새 회사채로 차환하는 만큼 새로 발행한 회사채의 이자와 만기 상환 부담은 남는다. 금리가 더 오르거나 건설채 투자심리가 악화하면 다음 차환 과정에서 조달비용이 커질 수 있다.
롯데건설은 앞으로 받을 공사대금을 미리 현금화했다. 지난 7일 준공을 앞둔 주택사업장과 그룹 계열사 건축사업장의 공사대금채권을 기초로 3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다. 지난 5월 1차 발행에 이은 두 번째 조달이다.
건설 현장은 통상 공사비를 집행하고 2~6개월 뒤 공사대금을 회수한다. 롯데건설은 공사대금채권 유동화를 통해 공사비 투입과 동시에 자금을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두 차례 ABS 발행으로 2027년 1분기까지 약 7700억원의 공사비를 조기에 회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ABS 신용등급은 금융기관의 신용공여와 롯데건설의 예금 운용 등을 바탕으로 롯데건설 자체 신용등급 A0보다 높은 AAA로 책정됐다. 조달비용을 낮추고 공사대금 회수 시점을 앞당길 수 있지만 전체 공사대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받을 공사대금채권을 먼저 현금화하는 구조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공사비와 토지비, PF 금융비용은 사업 초기에 집중되지만 분양대금과 공사대금은 뒤늦게 들어오는 구조"라며 "금리와 원가가 함께 오르는 시기에는 현금을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채나 전환사채 발행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건설사들이 모두 유동성 위기에 놓였다고 볼 수는 없다"며 "신규사업 투자나 기존 채무 차환, 공사대금 조기 회수 등 자금의 사용처와 만기 구조를 구분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건설업황 부진을 최근 자금조달 확대의 공통 배경으로 꼽았다. 조달 목적과 상환 구조에 따라 건설사별 재무 부담도 달라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수요가 위축되고 서울 일부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과 상가 시장이 부진해 건설업황이 좋지 않은 것이 공통적인 배경"이라며 "미래사업 투자를 위해 일으킨 부채와 기존 사업의 손실을 메우거나 버티기 위한 부채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건설사와 자금 용도를 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이자 전환사채는 당장 이자가 나가지 않아 기존 차입보다 유리하고, 공사대금채권 유동화는 나중에 받을 돈을 금융기관을 통해 먼저 현금화하는 방식"이라며 "이 같은 시장성 조달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도와 상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