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티 반군, 사우디 대상 해상 봉쇄 선언.ⓒ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 항로까지 원유 공급망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홍해로 원유를 수송해 온 우회로마저 위협받게 됐다. 정부와 국내 정유사들이 비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에 나섰지만 국내 정유설비가 중동산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어 단기간에 의존도를 크게 낮추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뒤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원유를 운송한 뒤, 이를 유조선에 실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치는 홍해 항로를 통해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얀부항에서 원유를 선적해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 거쳐 국내로 운송하고 있다.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막을 경우, 사우디 원유 수출 대부분이 차단돼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7% 가량이 줄어들게 된다.
중동산 원유에 집중된 국내 공급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낮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50%를 웃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원유 수입에서 중동산이 차지한 비중은 62.8%다. 이는 지난해 69.1%보다 6.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이후 미국 등 비중동 지역에서 원유 도입을 늘린 영향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유 수입선 다변화 지원에 나섰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는 대체 원유 수입에 필요한 자금을 전액 저리로 대출하고, 비중동산 초중질유 정제기술 개발과 운임 지원을 추진하는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원유 도입국을 바꾸는 것만으로 중동산 의존도를 단기간에 크게 낮추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동산 중질유를 들여와 휘발유와 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사업 역량을 구축해왔다. 국내 정유설비는 중동산 원유의 황 함량 등에 맞춰 최적화돼 있다. 비중동산 원유도 다른 유종과 적절히 혼합하면 기존 설비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제품 수율, 정제마진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도 실효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산 등 초경질유 도입 확대가 국내 설비의 운영과 공정 조정에 추가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원유 도입선 다변화는 운송거리뿐 아니라 유종 특성 차이에 따른 비용 구조 변화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 20여 년간 중질유 처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업계에서는 기존 고도화설비의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려면 단순한 운임 지원을 넘어 공정 개선과 설비투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설비는 중동산 원유의 성상에 맞춰 구축돼 있어 비중동산 중심으로 전환하려면 사실상 공장을 새로 짓는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비용이 수조원대에 이를 수 있어 에너지 안보 차원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