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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오르면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목표주가를 올린다. 주가가 더 오르면 목표주가도 다시 올라간다. 다른 증권사가 더 높은 숫자를 제시하면 질세라 그보다 높은 목표가를 내놓는다.
요즘 일부 증권사 리포트를 보고 있으면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것인지, 주식시장을 향해 "제발 더 올라라"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특히 반도체주를 둘러싼 증권가의 장밋빛 전망은 놀랍다. "삼성전자 60만원", "SK하이닉스 400만원" 같은 목표가가 시장을 떠돌고, AI 혁명과 HBM 슈퍼사이클,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이를 뒷받침한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더 오를 이유가 생기고, 밸류에이션이 높아져도 이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성장 논리가 등장한다.
그랬던 증권가의 분위기는 최근 들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일부 리서치센터장들은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5.8배 수준까지 떨어져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한 역사적 저평가 구간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추가 하락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현 지수대가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밀렸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코스피 하단이 4000~4500선까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만피' 전망이 대대적으로 쏟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물론 목표주가는 전망이고 전망은 틀릴 수 있다. 문제는 상승할 때 한없이 낙관적이던 전망이 주가가 폭락한 뒤에야 현실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르면 '슈퍼사이클', 떨어지면 '건전한 조정', 더 떨어지면 '저가 매수 기회'라고 하다가 결국 시장이 무너지면 그제야 '실적 눈높이 조정'과 '밸류에이션 부담'을 꺼내 든다.
그 사이 투자자는 이미 고점에서 주식을 샀다.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수정하고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리포트를 내면 그만이지만 높은 목표가와 낙관적인 전망을 믿고 투자한 개인의 계좌는 박살난 상태다. 증권사의 전망은 숫자 하나를 바꾸면 끝날 수 있지만 투자자의 손실은 실제 돈이다. 빚을 내 투자했다면 주가가 떨어진 뒤에도 빚은 그대로 남는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리포트의 결론이다. 시장이 올라가도 '매수', 조정을 받아도 '매수', 폭락하면 '적극 매수'다. 이후 반등하면 상승 추세가 재개됐다며 또다시 '매수'를 외친다. 그렇다면 도대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말하는 '매도' 시점은 언제인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망 역시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AI 산업이 성장한다는 것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끝없이 오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기업이 반드시 좋은 주식인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산업과 기업이라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투자하면 나쁜 투자가 될 수 있다.
더욱이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가격이 오르면 투자가 늘고 공급이 증가한다. 공급이 수요를 앞서기 시작하면 가격은 다시 떨어진다. AI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본 원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위험을 시장보다 먼저 분석하는 것이 리서치센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반도체 주가가 치솟을 때는 AI 혁명과 슈퍼사이클을 외치다가 시장이 무너지면 그제야 수요 둔화와 자본지출(CAPEX) 조정, 밸류에이션 부담을 이야기한다. 위험을 폭락 전에 경고하지 못하고 폭락한 뒤 설명하는 리서치가 투자자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증권업계는 주식시장과 운명을 같이한다. 증시가 활황이면 거래가 늘어 수수료 수익이 증가하고,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기업금융 사업도 활발해진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식시장이 오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서치센터마저 주식시장의 호객꾼이나 영업부서와 같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회사의 이해관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상승 가능성뿐 아니라 하락 위험과 불확실성까지 함께 제시하는 것이 리서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 낙관론이 확산할수록 위험 요인을 짚어내는 분석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진다.
리서치센터는 증시 부양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시장이 오를 때 더 오른다고 하고 떨어질 때는 싸졌다고 하며 폭락한 뒤에야 전망을 낮추는 것이 과연 리서치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수십 페이지에 걸친 보고서의 결론이 결국 "주식시장은 좋아질 테니 무조건 사라"라면 어려운 숫자와 그래프를 동원해가며 굳이 '리서치'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