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메모리로 이동하고 있다. 누가 가장 빠른 AI칩을 만드느냐를 넘어 누가 필요한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AI 인프라 경쟁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AI 서버 확산은 메모리 수요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에 집중됐던 수요가 DDR5, LPDDR, 낸드플래시, 기업용 SSD로 번지고 있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오고 이동시키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격 등락에 따라 움직이던 과거 메모리 사이클이 고객사의 장기 물량 확보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BM 넘어 낸드·SSD까지 번진 AI 수요
16일 하나증권에 따르면 6월 1~10일 기준 영업일 평균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11억2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159%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DRAM이 308% 증가한 4억9000만달러, NAND가 151% 늘어난 8199만달러였다. MCP(멀티칩패키지)와 SSD(AI 서버용 반도체 기반 저장 장치)도 각각 81%, 91% 증가한 4억5000만달러, 1억1000만달러로 집계됐다.
가격 흐름도 강세다. 교보증권은 6월 1~10일 기준 MCP 가격이 전월 대비 72.5%, 낸드 가격이 24.3%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또 AI 서버가 LPDRAM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NAND에서는 3~5년 장기공급계약이 논의되는 등 우호적 업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과거처럼 가격이 오른 뒤 공급사가 뒤따라 증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사가 먼저 물량을 묶어두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승부처는 캐파보다 ‘어디에 줄 것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반기 승부처도 단순 증설이 아니라 배분 전략으로 옮겨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고, 삼성전자는 HBM4와 차세대 메모리 경쟁력 회복을 노리고 있다. 동시에 DDR5, LPDDR, 낸드, 기업용 SSD 수요까지 함께 커지면서 제한된 웨이퍼와 설비를 어디에 우선 투입하느냐가 실적을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
증설 기대도 이미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34년까지 웨이퍼 생산능력을 3배 확대할 계획이다. 교보증권은 SK하이닉스 Y1은 2027년 중, 삼성전자 P5L은 2028년 중 신규 팹 양산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메모리 산업의 고질적 위험은 공급 과잉이다. 업황이 좋을 때 무리하게 캐파를 늘리면 수요가 꺾이는 순간 가격 하락과 재고 부담이 반복된다.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 다른 지점은 고객사의 물량 확보 의지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AI 서버와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는 단기 가격보다 안정적 조달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장기계약, 예약 물량, 선급금 논의가 늘어날수록 메모리 업체의 투자 판단도 단순 증설에서 고객별·제품별 배분으로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이클의 관전 포인트는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어디에 먼저 줄 것인가’다. HBM은 수익성을, DDR5와 LPDDR은 서버·모바일 확산성을, NAND와 SSD는 데이터 저장 병목을 좌우한다. AI가 메모리 전 제품군의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도 증설 경쟁을 넘어 포트폴리오 배분 경쟁으로 정교해지고 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AI 서버가 LPDRAM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NAND에서는 3~5년 장기공급계약 등 우호적 업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