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탈(脫) TSMC'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TSMC의 첨단 공정 생산능력이 한계에 이르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지만 미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인텔이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빅테크 수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은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와 대형 고객사 수주 확대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의 생산 병목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되 인텔이라는 새로운 경쟁 변수에 대한 대응 전략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TSMC는 AI 투자 붐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엔비디아와 애플, AMD, 브로드컴, 마벨 등 주요 빅테크와 팹리스 기업들이 첨단 공정 물량을 대거 맡기면서 생산라인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실제 TSMC의 올해 5월 매출은 4169억 대만달러를 기록하며 월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고성능 컴퓨팅(HPC)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첨단 공정 가동률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 부족이다. 업계에서는 TSMC의 3나노 공정 신규 주문 리드 타임이 1년을 넘는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조차 엔비디아와 생산 물량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할 정도로 첨단 생산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빅테크 기업들은 특정 업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형 고객 확보에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 AI6 생산 계약을 따냈고, 엔비디아와도 자율주행용 반도체와 AI 스타트업 그록(Groq) 칩 생산 협력을 진행 중이다. 구글과는 차세대 AI 반도체 TPU와 서버용 프로세서 액시온(Axion) 관련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AMD 역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활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글의 차세대 TPU10 '아이스피시' 프로젝트에서는 삼성전자가 HBM과 프로세서를 연결하는 핵심 부품인 I/O 다이 생산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단순 위탁생산을 넘어 HBM과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턴키'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세계 유일 수준의 종합 반도체 역량을 앞세워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AI 반도체 시대에는 연산 칩 성능뿐 아니라 HBM과의 연결 구조, 전력 효율,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삼성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시장 분위기는 삼성에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인텔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파운드리 시장 2위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최근 18A-P 공정을 기반으로 한 첨단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대형 고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과 보조금 지원도 강력한 우군이다. 최근에는 애플 칩 생산 협력이 공식화됐으며, 구글 TPU와 엔비디아·테슬라 관련 프로젝트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을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하며 첨단 패키징과 시스템 통합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미국 내 생산을 선호하는 고객사 입장에서는 인텔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셈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TSMC의 생산 한계가 곧바로 자사 수주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미국 내 생산거점을 보유한 삼성 테일러 공장과 인텔의 미국 생산시설이 동일한 고객군을 놓고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2~3년이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최근 임직원 대상 설명회에서 "2028년 흑자 달성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현재 수조 원대 적자를 기록 중인 파운드리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테일러 공장의 안정적인 가동과 2나노 공정 수율 확보, 그리고 현재 협상 중인 구글·AMD·BYD 등의 고객사를 실제 수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장 확대와 TSMC의 생산능력 부족으로 고객사들의 공급망 다변화 수요는 분명히 커지고 있다"면서도 "이제는 삼성과 인텔이 누가 더 안정적인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보여주느냐의 경쟁으로 국면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이 테슬라 수주를 발판으로 추가 빅테크 고객을 확보하고, 테일러 공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경우 2028년 흑자 전환 목표 달성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