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지난 2월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 재판에서 당시 분체 거래 계약이 경영진의 지시가 아닌 실무진 판단에 따라 이뤄졌으며, 안정적인 원재료 수급을 위한 사업적 결정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도원 회장과 홍성원 전 삼표산업 대표에 대한 3차 공판 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삼표산업에서 레미콘 부문장을 맡고 있는 강경운 전무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 전무는 2016년 1월 1일 삼표산업 레미콘 기획팀장으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강 전무는 당시 분체 거래 가격 협상 과정에서 정도원 회장이나 정대현 부회장에게 단독으로 보고하거나 관련 자리에 배석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삼표산업 레미콘 기획팀이 분체 수요와 공급 상황, 건설 경기, 공장 운영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계열사 에스피네이처 중앙영업팀과 거래 조건을 협의했다고 증언했다. 협의 내용을 경영진에게 일일이 보고하거나 결재를 받는 구조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도 정도원 회장이나 홍성원 전 대표 등으로부터 특정 조건을 요구받거나 에스피네이처로부터 일방적인 강요를 받은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강 전무는 당시 삼표그룹 차원에서 분체 가격을 정해 놓은 정책이나 지침 역시 없었다고 주장했다.
분체를 100% 에스피네이처로부터 공급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효율성과 공급 안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사실상 에스피네이처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분체 시장은 상위 4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약 79%를 점유하고 있으며 대부분 계열사 중심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구조상 삼표산업이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에스피네이처와의 거래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2015년 무렵부터 외부 시장 가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삼표산업 내부에서도 분체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생겨 이후 단가 인하 요구 목소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본사 부임 당시 홍성원 전 대표로부터 안정적 공급 확보와 단가 인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협상 과정에서 에스피네이처는 비계열사에는 제공하지 않는 공급 안정화 서비스 비용을 반영해 t당 3000원을 요구했고, 삼표산업 측은 이를 2000원 수준으로 낮추는 협상을 진행했다.
강 전무는 결과적으로 비계열사 평균 단가 수준에 맞춰 정산하는 구조가 도입되면서 가격은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은 당시 거래 구조가 정상적인 사업 판단이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공정위 조사 자료를 근거로 2015년 이전 삼표산업과 에스피네이처 간 분체 거래에서 내·외부 단가 차이가 약 7% 수준이었다고 제시했다. 이후 2016년에는 4%, 2020년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조정됐다고 설명하며 가격 결정 과정과 배경을 캐물었다.
특히 에스피네이처가 기존에도 분체를 공급해 왔음에도 별도의 공급 안정화 서비스 비용을 지급할 필요가 있었는지, 실제로 계약 체결 전후 공급 서비스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강 전무는 당시 분체 수급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건설 경기 호황으로 분체 수요가 급증했고 슬래그파우더와 플라이애시 모두 공급 부족 현상이 반복됐다고 증언했다.
특히 플라이애시는 화력발전소 정비 시기와 레미콘 성수기가 겹치면서 공급 부족이 상시적으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시멘트(OPC)로 대체해야 하는데, 이 경우 원가가 상승해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관 시설 부족 문제도 언급됐다. 강 전무는 성수·풍납·서부 공장이 도심권 레미콘 공급의 40% 이상을 담당했지만 분체를 보관하는 사일로 용량은 소비량 대비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장 이전 이슈까지 겹치면서 추가 사일로 설치 허가도 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에스피네이처 역시 적시 공급을 위해 별도 비용을 부담했다고 증거를 제출했다.
에스피네이처가 인천 지역 제품 사일로를 임차해 운영했으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사일로 임차료와 항만 부지 사용료 등으로 수십억원의 비용을 지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 회장은 2016년부터 3년간 정대현 삼표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에스피네이처로부터 분체를 시장가격보다 약 4% 비싼 가격에 공급받도록 해 약 74억원 상당의 부당 지원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음 공판기일은 내달 8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며 증인으로는 이병훈 에스피네이처 총괄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다.